1804년 2월 6일, 세계 최초의 산소 발견자로 알려진 영국의 조지프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가 생을 마감했다.
프리스틀리는 ‘기체 화학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과학 외에도 성직, 신학, 교육학, 정치학, 자연철학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다. 특히 그에게 과학은 ‘즐기는 일’일 뿐이고, 본인의 천직은 성직자라고 생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스틀리는 1733년 영국 잉글랜드 북부에서 부유한 의류 제작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뜨면서 숙모 손에서 자란 프리스틀리는 학습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특히 과학에 관심이 많아 화학과 전기 등을 연구했다. 프리스틀리가 여러 종류의 공기에 대해 연구를 시작한 후 다양한 발견을 하게 된다. 양조장 근처에 살던 그는 양조 과정에서 거품이 발생하는 것을 보고 이산화탄소의 성질을 규명했다. 물에 이산화탄소를 녹여 소다수를 제작하는 방법도 개발한다.
당시만 해도 이산화탄소와 수소만 알려졌으나 일산화질소, 이산화질소, 산화이질소, 염화수소, 이산화황, 암모니아 등의 기체를 연이어 발견했다. 이후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인 산소를 발견한다. 프리스틀리는 적색 산화수은을 렌즈를 이용해 태양열로 가열하는 방식으로 산소를 얻었다. 그는 산소 발견 결과를 1775년에 발표했다.
하지만 그의 최대 성과인 산소 발견은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동 시대의 과학자인 칼 빌헬름 셸레가 프리스틀리보다 앞선 1773년에 산소를 발견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셸레의 연구 성과는 인쇄소의 실수로 출간되지 않았고, 결국 세계 최초 산소 발견자의 자리를 프리스틀리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학자로서 뛰어난 성과를 보였지만, 그의 말년은 쓸쓸했다. 그의 집이 폭도들로부터 공격 받은 후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했고, 목사로서 쓸쓸한 생활을 보냈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100편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