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통신 마비시키는 ‘전자기파(EMP) 폭탄’ 시나리오별 대비책 만든다

국방부가 전기와 통신을 일시에 마비시키는 ‘전자기파(EMP:Electromagnetic Pulse) 폭탄’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EMP 폭탄은 한 번 터지면 일정 반경 내 모든 전자제품과 통신, 전기를 마비시킨다. 군뿐만 아니라 민간시설도 큰 타격을 입기 때문에 대비책이 시급하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국방시설본부가 발주한 ‘방호대상을 고려한 효율적인 EMP 방호시설 연구용역’을 안세기술 컨소시엄이 수주해 연구를 진행 중이다. 국방 분야 주요 EMP 방호대상과 대상별 규모 및 유형에 따른 비용 산정, 소요 예산 제기 지침, 설계 기준과 발전방향 등을 도출하는 게 목표다.

합참 지휘부 등 일부 국방 시설에는 이미 EMP 방호시설이 구축됐지만 중요 시설로 지정된 수백개 시설은 여전히 EMP 공격에 무방비다. 이에 따라 정부는 30~40년 후를 내다보고 주요 국방 시설의 EMP 방호설비를 지속적으로 구축할 계획이다.

하지만 실무 부서에서 설비를 구축하려고 해도 소요 예산을 파악하기 어렵고 설계 시 고려해야 할 점도 잘 모른다는 게 이번 사업의 추진 배경이다. 오는 9월 결과물이 도출되면 사업 발주 시 효과적인 예산 산정과 사업 방향 설계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사업에 참여 중인 업체 관계자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예산 소요 제기 지침으로 체계적 조사를 거쳐 유형별 비용을 산정하기 위한 결과를 도출하는 게 목적”이라며 “설계 기준은 기존의 반경 수백㎞에 이르는 핵 중심에서 다양한 위협 형태까지 고려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리없는 폭탄’으로 불리는 EMP 폭탄은 고출력의 마이크로웨이브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발생시켜 적의 지휘통제체계와 방공망 등 모든 전자기기를 무력화시킨다. 수백m(핵폭탄은 수백㎞) 내 전자기기 회로에 과부하를 흘려 장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직접 피해를 주지는 않아 ‘인도적 비살상무기’로도 불린다.

40~60㎞ 고도에서 터지면 대기 중에 강력한 전자기파가 퍼지면서 지하 벙커라도 환기구나 안테나를 통해 컴퓨터와 통신 장비가 모두 마비된다. 통신, 교통, 금융 등 전기 신호가 사용되는 모든 설비가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마치 100년 전으로 돌아간 것과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

EMP 방호시설은 철 같은 금속으로 시설 전체를 감싸고 입구는 이중으로 동시에 열리지 않도록 구성한다. 공기는 통하되 전자기파는 못 들어가는 통풍구(허니컴), 항온항습기 등 공조설비, 비상용 발전기 등이 방호시설의 핵심 구성 요소다. 정부에서는 주요 시설에 이 같은 방호시설을 순차적으로 설치할 계획이지만 통신사를 비롯한 민간 분야에서는 아직 심각성을 못 느끼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통신을 비롯한 주요 기간 시설이 모두 EMP 폭탄에 큰 피해를 볼 수 있는데 민간 분야에서는 아직 눈에 띄는 준비를 하는 곳이 없다”며 “민간 업체도 유사시 혼란을 막기 위한 세부 계획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