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열에 아홉은 국내 핀테크 산업의 발전이 더뎌지는 것을 ‘규제’ 탓으로 돌린다. 마치 액티브X만 사라지면 국내에 저절로 핀테크 산업이 성장할 것처럼 들린다. 업계의 수많은 포럼이나 기고 글을 살펴봐도 모두 ‘금융 규제철폐’ 일색이다.
미국이나 중국 업체들이 세계 핀테크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얼른 우리도 규제를 풀어 글로벌 핀테크 경쟁 대열에 뛰어들 수 있게 하자고 주장한다.
이만하면 핀테크 산업 육성의 전제는 ‘규제철폐’라는 프레임이 설정된다. 명분과 실리, 공감대모두 형성됐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구체적으로 어떤 규제 때문에 막혀 사업이 힘든지 자세히 말해 달라고 호소한다. 무조건적으로 규제만 다 철폐해 달라는 통에 정신이 없다고까지 토로한다.
규제철폐라는 원론은 이미 득세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각론’으로 들어가자는 이야기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그래야 들어주는 사람도 전향적으로 사안을 검토해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박근혜 대통령이 핀테크 산업 육성에 힘써 달라고 말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난달 말 금융위원회는 IT금융융합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60쪽에 육박했던 보고서였지만 큰 틀과 방향만 제시돼 있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규제를 개선해 나갈 것인지의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가 아직 구체적인 규제해결 방안을 논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인 규제 완화책이 나오기 위해선 산업계도 각론으로 들어가 요구사항을 납득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금융 산업에 오래 몸담은 당사자들이 오히려 업계 사정을 더 잘 알고 있으니 디테일을 살릴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 요구하는데 당국도 추상적인 답변만을 언제까지 늘어놓고 있을 수는 없을 터다.
어떤 규제가 불필요하고 규제가 사라졌을 때 얼마만큼의 더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숙제는 산업계의 몫이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