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언론에 핀테크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우리나라 산업 중에 가장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라 할 수 있는 금융산업에서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음을 느낀다. 사실 스타트업에 금융기관은 거대한 성과 같아서 어느 부서의 누구와 얘기를 시작해야 하는지도 알기 어려웠다. 설령 어렵게 누군가를 만나도 금융기관에 대한 각종 규제가 여기저기 얽혀 있고, 또 시스템 자체도 굉장히 복잡해서 보통의 스타트업으로선 자신들이 가진 특정 솔루션을 판매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스타트업들이 솔루션을 개발해 놓고 그 가치를 알아봐 주는 금융기관이 없어 동분서주하는 것을 많이 봤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당국이 앞장서서 금융기관 보고 성문을 열고 스타트업을 만나서 도와주라고 하니 스타트업 입장에선 감지덕지할 따름이다.
금융기관들도 당국 스스로가 나서서 규제를 없앤다고 하니 뭔가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 동안 혁신하지 못한 것이 당국의 복잡하고 두꺼운 규제 때문이라고 치부하다가 규제가 없어진다고 하니 이제 다른 핑계를 대기 어려워졌다. 더군다나 초저금리로 금융기관의 수익성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수익이 나지 않을 때의 신규사업이나 혁신은 자원 투입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IT를 활용한 신규사업에 주력하게 된다.
또 미국·영국·중국의 금융과 IT 융합 모델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또 이들이 이제 곧 한국으로 들어온다고 하니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한국 금융기관으로서는 어쨌든 겁먹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금융기관들도 뭔가 빛나는 솔루션을 찾게 됐고 그래서 핀테크가 갑자기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핀테크는 양복에 넥타이 매고 깔끔한 은행원과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젊은 프로그래머가 같이 일하는 것이다. 우선 서로 필요해서 한 방에서 같이 작업하고 있지만 이들이 제대로 대화가 되고 작품이 나올 수 있을지 걱정된다. 같이 일하는 프로젝트 룸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서로 일하는 패턴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아마도 청바지가 대화를 주도하고 정장이 마지못해 설명해 주거나 아니면 그 아이디어가 우리나라 현실에선 왜 안 되는지 설명하고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핀테크의 핵심 아이디어가 금융쪽 보다는 IT쪽에서 나올 거고, 실행력이 금융 쪽보다는 IT 쪽이 훨씬 강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버드 비즈니스리뷰에 따르면 스타벅스, 구글 그리고 알리바바가 은행의 새로운 경쟁자가 됐다. 액센츄어는 “5년 뒤 2020년이 되면 비금융 부문의 침입자들이 기존의 전통적인 은행 수입의 3분의 1을 가져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칸톡스(Kantox)의 CEO인 필립 겔리스는 “핀테크가 마치 인터넷이 신문이나 음악 시장을 변화시킨 것처럼 금융 부문을 변화시킬 것이다. 그동안 금융 부문은 몇 개의 대형 은행이 독과점체제로 운영되면서 정체되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핀테크가 이 금융 부문의 혁신을 촉진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은 새로운 기업이나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적절한 생태계가 조성돼야 한다. 애플이 그랬고 구글이 그랬다. 외국의 대형 IT회사들이 인수합병(M&A)에 적극적인 이유가 그래서 그렇다. 시장에서 필요한 기술과 인력을 M&A해서 잠재적 고객층을 넓혀 나가고 있는 것이다. 작은 스타트업들은 회사를 넘기면서 상당한 자금을 얻은 뒤에 또 다른 아이디어를 찾아 내면되고, 중대형 벤처들은 이들 솔루션을 끼워넣어 보다 강력한 솔루션으로 진화하면서 시장을 주도해 나가는 그런 생태계가 필요한 것이다.
정부 지원도 핀테크 생태계의 조성에 힘쓰고 거기까지만 도와주면 된다. 문제는 우리나라 은행들이 대표적인 대기업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속성은 모든 것을 자기 그룹 내에서 수직계열화 하려고 하지 절대 외부에 생태계를 만들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기업이 얘기하는 생태계는 자기 그룹 내에서의 협업을 얘기할 뿐이다.
그래서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우리나라 핀테크가 활짝 개화하기 위해선 은행원들이 정장을 벗고 청바지를 입어야지 청바지 보고 정장 입으라고 하면 안 된다. 은행장들도 기회가 되면 인터넷은행도 직접 해보고 싶다고 하지만 좀 참아야 한다. IT 쪽 중소 기업들이 인터넷은행하는 것을 방해만 안 하면 좋겠다. 직접 하게 되면 내부에서 채널 충돌 문제 때문에 정말 경쟁력 있는 인터넷 은행이 나오기가 더 어렵다. 인터넷은행의 경쟁자는 외부에 아니라 내부에 있을 것이다.
금융·통신·유통, 모든 업종에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비즈니스로의 전환은 거의 불가능하다. 채널 충돌 때문에 그렇다. 처음부터 온라인 비즈니스로 시작해야만 성공한다. 옴니 채널은 대기업에서 성공하기 어려운 과제다. 큰 나무 밑에서 작은 나무들이 크기 어렵다. 오히려 큰 나무가 쓰러지고 난 자리에 새로운 작은 나무들이 힘차게 자라는 법이다. 그게 자연의 법칙이다.
CIO포럼 회장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