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과 엔씨소프트의 경영권 다툼이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넥슨의 주주제안 공문을 보니 엔씨소프트 경영진에 대한 불신이 가득하다. 이례적으로 공문을 공개해 대내외 명분 쌓기에 들어갔다. 3월 주주총회 표 대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넥슨은 주가 상승을 기대하는 주주를 끌어와 불리한 지분 상황을 반전시켜 엔씨소프트를 압박할 셈이다. 지난해 10월 지분 추가 매집 때 ‘단순투자 목적’이라며 ‘쉴드’를 쳤던 짓도 희석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주가 부양을 위한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랬다면 민감한 가족문제까지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양사 모두 ‘돌아오지 않을 강’을 건넜다. 결국 누가 우호지분을 더 많이 확보하는가로 결판이 날 싸움이다. 서로 엇비슷하니 장기전 가능성이 높다.
엔씨소프트가 넥슨 요구를 순순히 들어줄 것 같지는 않다. 특히 향후 경영권 지분 싸움과 직결될 자사주 처분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넥슨은 설령 경영 참여를 하지 못해도 크게 잃을 게 없다. 경영권 분쟁으로 주가가 더 오르면 넥슨재팬 주주와 일본 채권은행 성화를 일단 달랠 수 있다. 지분을 더 비싸게 팔면 더할 나위 없다.
넥슨 행보를 적대적 인수합병(M&A) 수순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가능성은 낮다. 인수해 얻을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해외 게임사 공동 인수 무산 이후 양사가 진행한 협력 프로젝트마다 실패했다. 합병 시너지가 없음을 확인했다. 넥슨이 키우는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엔씨소프트 역할은 아직 미미하다. 인수하느니 투자금 8000억원을 빨리 회수해 다른 데 쓰는 게 낫다.
엔씨소프트는 경영권만 흔들리지 않으면 된다는 입장이다. 지금껏 별다른 내응을 하지 않은 것을 보니 판세를 낙관하는 듯하다. 우호지분 확보로 넥슨 공세를 너끈히 막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넥슨 지분 향방이 변수다. 넥슨이 지분을 외국 기업에 넘길 수 있다. 엔씨소프트는 넥슨보다 외국 기업 상대가 차라리 더 편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 상대가 적대적 M&A를 노릴 세력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엔씨소프트가 10일까지 내놓을 답변보다 그 이후 넥슨이 내놓을 새 카드가 더 궁금하다.
한국 게임산업은 기로에 섰다. 주력인 온라인 게임시장은 위축됐다. 미국과 중국 게임업체 공세에 숨이 막힌다. 특히 중국 게임자본은 국내 개발사까지 손을 뻗쳤다. 해외시장 공략은커녕 국내 시장과 산업 생태계마저 빼앗길 판이다. 정부 게임 규제엔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한다. 이 상황에 게임산업 양대산맥이 흙탕물 싸움을 벌인다. 그것도 돈 싸움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넥슨과 엔씨소프트는 정작 텃밭에서도 인심을 잃었다. 미국 게임 ‘리그오브레전드’는 국내에서 학부모 원성을 사지만 두 회사 게임은 청소년 게이머의 원성을 산다. 개발사도 두 회사보다 외국 업체 손짓을 더 기다린다.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할 두 회사가 서로를 더 부끄럽게 만드느라 열성이다.
이미 금이 간 관계다. 감정까지 얽혀 땜질로 메꿀 금이 아니다. 서로 ‘쿨’하게 헤어지면 좋으련만 때를 놓친 듯하다. 이왕 벌인 싸움, 질질 끌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더욱이 엔씨소프트는 넥슨 지분을 되살 의향을 밝혔다. 가격 협상이 쉽지 않겠지만 가능하면 3월 주총까지 결판을 냈으면 좋겠다. 이별이 빠를수록 국내 게임 산업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