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주심과 부심이 경쟁하는 경기장

[기자수첩]주심과 부심이 경쟁하는 경기장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제주도 영업용 차량 대상 전기차 보급 사업에 소비자와 관련 업계가 혼란을 겪고 있다.

산업부는 국가 전력판매 독점기업 한국전력을 통해 전기택시·전기버스·렌터카에 한해 배터리 리스·관리 및 충전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지금까진 환경부 보조금을 받아 전기택시를 구매할수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이 같은 혜택을 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 산업부가 다년간 배터리 성능을 보장하면서 충전인프라까지 제공하기로 정함에 따라 이중 지원을 피하기 위해서다.

더욱이 제주에는 이미 두세곳의 충전인프라 민간업체가 있지만 영업용 차량은 산업부가 정한 충전인프라를 이용해야 한다. 큰 범위에서 보면 환경부가 단계적 추진해온 전기차·충전인프라 보급사업과 중복논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산업부는 환경부와 사전 협의를 거쳤다고 했지만 애초부터 시장 활성화를 위해 두 부처가 머리를 맞댄 게 아니다. 산업부는 한전을 통해 사업 모델을 정해 놓고 사업 영역은 환경부와 합의하는 수순을 밟았다. 방식 차이는 있지만 소비자·업계로서는 엄연히 같은 사업이다. 결국 부처 간 경쟁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소비자뿐만 아니라 완성차·충전기·충전서비스 업체, 지자체까지 불만을 토로하며 산업부가 굳이 유사한 사업에 뛰어든 배경과 목적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산업부는 전기차 보급에 참여하는 것 말고도 시급한 일이 많다. 국내만 유일하게 팔(충전케이블) 세 개 달린 충전기를 사용하는 데다 장애인용 충전기준은 없고 차량별 충전 안전기준도 제각각이다. 여기에 민간시장 창출을 위한 시장 제도나 하다못해 전기요금 등 시장 규칙도 없다. 이 때문에 포스코ICT 등 민간 기업은 정부 정책이 나오기를 기다라며 시장을 준비 중이지만 전력판매 독점사인 한전의 시장 참여로 반발하는 눈치다. 결국 산업부 주도 사업이 민간 시장에 혼란을 가중시킨 셈이다.

세계 선진 전기차 시장에서 이렇게까지 정부가 시장에 참여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경기를 잘 진행해야 하는 주심인 환경부와 부심인 산업부는 보급 사업에서 한발 물러나 민간이 경쟁할 수 있는 시장을 조성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시장 참여를 유도하는 제도나 저탄소차협력금제와 같은 정책으로 시장 창출에 노력하기를 업계는 바라고 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