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기획] 양날의 칼, 대륙의 `반독점법`

결국, 미국 퀄컴이 중국 정부가 부과한 ‘반독점 벌금’ 약 10억달러(1조1000억원)를 전액 물기로 했다.(본지 2014년 12월 8일자 12면 참조)

10일 로이터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퀄컴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는 조만간 이같은 최종 협상 결과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이슈기획] 양날의 칼, 대륙의 `반독점법`

퀄컴이 내게 될 벌금은 중국이 기업에 부과한 과징금 중 사상 최대 액수다. 지난해 중국 당국이 국내외 업체와 공기업 등에 부과한 반독점 벌금 총액이 3000여억원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퀄컴이 납부하게 되는 이번 벌금이 얼마나 큰 금액인지 어림할 수 있다.

◇中 문화 정서상 “독점은 마약”

‘롱뚜안’(壟斷)

중국어로 ‘독점’을 뜻하는 이 말은 맹자 공손추하의 ‘必求壟斷而登之,以左右望而罔市利’(어떤 사람이 높은 곳에 올라가 시장 사정을 살펴본 뒤, 자기 물건을 팔기에 적당한 곳으로 가서 상업적 이득을 독식한다)에서 유래했다.

그만큼 독점은 유교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중국인들의 문화적 정서상, 극단적 혐오의 대상이라는 얘기다. 특히 그 대상이 서방국가 기업 등 외세에 의한 것이라면 역사적 ‘트라우마’까지 겹쳐 ‘마약’에 버금가는 단호함을 보이는 게 중국 정부다.

중국의 반독점법 집행 행위를 단지 ‘자국 업체 보호’라는 단편적 시작만으로 봐서는 최근의 사태가 쉽게 설명되지 않는 이유다.

실제로 반독점법에 의해 당국의 처벌을 받은 기업 중 상당수가 예상과 달리 자국 업체다. 지난해 톈진에서 열린 ‘2014년 하계 다보스포럼’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는 중국 반독점 조사를 받은 기업 가운데, 외국기업은 10%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중국에 진출한 외자기업만을 타깃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는 건 확실해 보인다.

중국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우량예나 마오타이 등과 같은 전통주 제조업체들도 이미 지난 2012년 반독점법에 따라 벌금을 부과받았다.

◇반독점법, 미리 알고 대비하자

현행 중국 반독점법에 따른 벌금액 산정 기준은 전년도 중국내 매출액이다.

매출의 최대 10%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기 때문에 지난 2013년도 퀄컴의 매출이 248억7000만달러고, 이 가운데 절반가량인 123억달러가 중국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이번 벌금액은 최대치를 기준으로 부과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퀄컴은 이번 과징금을 그대로 인정하는 대신, 향후 중국 휴대폰 제조업체들로부터 로열티 등 각종 기술 특허를 정확히 거둬드릴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실제로 퀄컴은 이날 성명을 통해 중국 정부의 벌금을 그대로 인정키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올해 실적 전망치도 상향 조정했다. 잠재적 악재로 해결된 만큼, 안정적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중국 반독점법의 칼끝이 IT에서 ‘자동차’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미리 대비해야할 대목이다.

KOTRA 칭다오무역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이 발급한 반독점 벌금통지서 가운데 자동차 업계가 90% 이상을 차지했다.

일본 차부품 업체인 스미토모가 2억9000만위안의 벌금을 부과받아 가장 많았고, 야자키와 덴소도 각각 2억4108만위안, 1억5000만위안 등을 내야할 상황이다.

이 밖에도 아우디, 크라이슬러, 벤츠, 토요타, BMW 등 주요 글로벌 완성차 판매중개업체의 가격 독점 행위에 대해서도 수억원의 벌금이 부과된 상태다.

◇중국 비즈니스, 악법도 활용할 줄 알아야

글로벌 IT기업을 중심으로 시작해, 최근에는 일본과 유럽의 자동차기업들에 이르기까지 중국 반독점법의 칼날이 갈수록 매서워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의 반독점법 집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중국민들의 문화적·정서적 특성을 읽고, 미리 대비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중국이 반독점법을 처음 기안한 것은 지난 1994년. 이후 정식 시행까지만도 14년이 걸렸다. 반독점법은 독점혐의와 시장지배력 남용행위, 경쟁제한적 기업결합 금지 등 3개 독점행위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중국 내에선 ‘경제헌법’이라 불리는 반독점법은 국적을 망론하고 어떤 대기업이든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가격을 조작하면 모두 위법행위가 된다.

박용민 KOTRA 칭다오무역관장은 “중국 반독점법이 외국기업에 대한 견제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경제개혁에 대한 의지 표명과 물가안정을 위한 당국의 강력한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며 “국내기업들도 반독점법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그 발전 흐름을 미리 분석해 선제적으로 대응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