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동생 김연아, 국민 배우 안성기. 이 같은 ‘국민’ 타이틀은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과 권위를 갖고 있으면서 친근한 이미지와 철저한 자기관리로 모범이 돼 국민의 자랑거리가 될 때 붙는 수식어다. 이제 예능이나 스포츠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계에도 국민의 자랑이 되는 국민 연구소가 나와야 할 때다.
‘국민연구소’는 세계적 수준의 실력을 바탕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고, 국가와 국민에게 필요한 기술을 제공해 국민의 신뢰를 받으면서도 친근한 이미지까지 갖춘 연구소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국민 연구소라 부를 만한 연구소는 아직까지는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과학기술계가 국가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했고 연구원들도 신뢰를 받았던 시절이 있었으나, 그 당시 과학기술은 전문가의 영역이지 국민에게 친숙한 분야는 아니었다. 지금은 정보보안, 환경자원, 인수 공통 전염병 문제 등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과학기술과 일상생활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 관심이 높지만, 안타깝게도 과학기술계 연구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나 성원은 예전만 못하다.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의 이해 수준과 기대치가 높아진 만큼, 이제 연구자도 전문 용어 대신 쉬운 말로 우리 일을 소개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사회적 이슈에 전문가로서 합리적인 의견 제시도 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학계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것은 물론이고 산업계나 정부부처 등 기술 수요자들의 의견이나 평판에도 귀를 기울이며, 국민에게 이해와 지지를 받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므로 ‘국민 연구소’가 돼야 할 의무가 있다. 지난 반세기 국가산업발전과 경제성장을 견인한 과학기술의 중심에 출연연이 있었지만, 대학과 기업의 과학기술 역량 향상 등 환경 변화에 따라 출연연의 국가 경제발전에 대한 기여도나 국가 혁신시스템 내에서의 역할 비중이 많이 줄어든 것 역시 사실이다.
이런 반성을 토대로 지금 출연연들은 새로운 시대환경에 걸맞은 임무 및 역할을 재정립하고, 각 분야의 국가대표 연구기관으로서 위상에 걸맞은 성과 창출을 위한 변화노력을 하고 있다. 기초과학이나 국가산업 발전의 인프라를 제공하는 기존의 역할에 더해, 연구성과를 창조경제로 연결하는 역할, 국민 행복이나 국가 안위와 관련된 공공기술 개발을 위해 연구소별 특색에 맞게 연구 방향을 조정하고 있다. 연구결과가 그 자체에 머물지 않고 중소기업을 통해 사업으로 창출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한 실천방안으로 우선시되는 것이 ‘융합’과 ‘소통’이다. 민간 연구소나 대학이 하기 힘든 대형 융합연구 체제를 만드는 일과 출연연 간 교류와 협력에 애쓰고 있다.
최근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속 25개 출연연이 모두 모여 지난해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국민에게 소개하는 ‘출연연 과학기술 한마당’ 행사를 연 것도 그 같은 목적의 일환이다. 국가 사회적 현안을 과학기술로 해결하기 위한 융합연구단도 출범했다. 연구자들 역시 자신의 연구 성과에 가치를 더하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기존에 해오던 방식을 바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제 실력만 주장하던 출연연에서 벗어나 국민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노력은 시작됐다. 대한민국의 자랑이 되는 국민 연구소가 나오는 날을 기다린다.
신용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yhshin@kris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