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만든 가장 좋은 경제제도 중 하나는 시장경제다. 시장경제와 쌍벽을 이뤘던 사회주의는 70여년간의 실험 끝에 동구권의 몰락과 더불어 실패한 제도임이 증명됐다.
시장경제의 핵심은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승자에게 더 많은 보수가 돌아가게 하고 이를 통해 사유재산을 늘려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제도의 특성을 보이지 않는 손에만 의존하다가는 시장 실패라는 결과가 발생해 시장을 교란시키게 되므로 산업정책이나 정부의 정책적 규제가 필요하게 된다.
요사이 우리 경제정책 중에는 시장 실패를 바로잡는 것보다는 시장 자체에 손을 대거나, 기업의 경영전략에 해당되는 가격까지 규제를 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쉬운 예로 유아교육이 사회적 관심사가 되면서 유치원 수업료가 너무 부담이 된다는 여론에 근거해 앞으로 유치원 수업료를 동결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유치원 수업료를 직접 통제해 가격을 올리지 못하게 하겠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시장경제 역사에서 가격을 통제해 물가를 관리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례는 보지 못했다.
통신 분야에서 지난 몇 달 사이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라는 규제가 법제화돼 시행 중이다. 이 법의 취지는 소비자가 단말기를 구매할 때 보조금이 천차만별이라 문제가 있고, 과도한 보조금 경쟁이 빈번한 단말기 교체로 이어져 통신비 증가와 자원낭비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법에선 지원금을 30만원 상한으로 판매점이 15% 추가 지급할 수 있고, 요금제에 비례해 지원금을 지급하되 1차함수의 기울기만을 적용해야 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에 통신사들이 단말기 가격을 깎아준다는데 얼마 이상은 안 된다고 규제해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이득을 막아버리는 산업정책이 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지원금도 요금제에 비례해 1차함수의 기울기를 적용하라고 명시한 것은 통신사들의 원가구조가 모두 똑같다는 가정으로 기업 몰이해의 극치다. 어떻게 통신 같은 장치산업에서 규모의 경제를 무시하고 모든 통신사가 원가구조가 같다고 가정할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단통법 시행 이후 단말기에 대한 보조가 제한됨에 따라 1차적으로 휴대폰 판매가 감소해 지난해 10월에는 전년 대비 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또 특이한 사항은 이런 단말기 판매감소가 1위인 삼성 제품보다는 2위 및 3위 제조업체인 LG전자와 팬택에 더 큰 악영향을 미쳐 1위 삼성전자의 단말비중이 확대된 것이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앞으로 고가를 유지하고 있는 애플의 한국시장 확대에 좋은 계기를 만들어 주는 셈이며, 단통법 이후 외국산 스마트폰 수입이 급증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결과론적으로 단통법은 통신사 간 경쟁에 따른 시장실패를 보완하기보다는 시장의 단말기 가격구조를 정부가 설계해보겠다는 것으로, 이는 시장이라는 기본을 흔들어 정부가 의도하는 시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결국 단통법을 통해 시장을 건드려 소비자를 위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반면에 가입자는 이전보다 축소된 지원금과 단기적으로는 요금인하의 혜택을 받기 어려운 불리한 환경에 노출됐다.
정부가 산업정책을 펼쳐 특정 산업을 진흥하려면 시장이 형성되도록 도와주고 생산시설이 증가하도록 해야 한다. 결코 정부가 정책을 통해 시장을 바꾸려고 해도, 시장을 이긴 정부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곽수일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서울대 명예교수) skwak@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