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크라우드펀딩 관련 법 개정 유감

<벤처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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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중반 즈음, 잘 알고 있던 벤처 창업자 후배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벤처법률지원센터를 찾아왔다. 창업투자회사와 투자 협의를 하던 중 창업 당시 투자했던 지인이 차라리 자신들이 도와줄 테니 인터넷으로 직접 투자를 받아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문의하기 위해서였다. 그후 후배는 우여곡절을 겪은 후 무난히 1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인터넷을 통해 100여명으로부터 투자 받았다.

최근 크라우드 펀딩 등에 관한 입법 과정을 겪으면서 마치 새 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 1999년 벤처붐 당시 만연했던 ‘인터넷 소액펀딩’을 떠올린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따져보면 MP3, SNS(싸이월드), 동영상 서비스(판도라TV) 등 실리콘밸리 혁신의 상징처럼 된 비즈니스 모델이 사실은 우리 벤처기업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대부분이다. 킥스타(KickStart) 등 소셜 펀딩이나 크라우드 펀딩도 우리 인터넷 소액투자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크라우드 펀딩 등 핀테크는 알다시피 벤처캐피털·은행 등 전문가에게 집중된 의사 결정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집단 지성을 이용한 P2P플랫폼 사례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한 투자권유와 청약 권유 행위가 수반되므로 50인 이상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상 ‘공모’에 해당한다.

그래서 법안을 입법화하는 과정에서 투자자 보호라는 명제가 중요한 이슈가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투자자 보호라는 것을 법안의 주요 쟁점으로 제시한 것 자체를 탓할 일이 아니다. 다만, 크라우드 펀딩이 가진 본질적인 역할에 대해 눈을 감고 단순히 투자자 보호가 법안의 유일한 목적이자 취지라고 생각하고 그 목적을 이루겠다고 나서는 것은 본말을 전도시킬 주장이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창조경제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해 벤처 생태계에서 가장 부족한 엔젤 투자자를 발굴하고자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실시간으로 상호 정보(인터랙티브 커뮤니케이션)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플랫폼 신뢰를 기반으로 소액 엔젤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목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별 기업의 금액 한도설정은 가능하지만 연간 투자한도를 설정하자는 규제는 포트폴리오 확대를 통해 위험을 분산하는 분산투자 원칙에 반하고 오히려 손실을 키울 가능성이 높다는 게 상식이다. 환매금지를 통한 투자자의 진정성 확인은 오랜 경험상 회피 기법만 키우고 오히려 ‘십자가 밟기’와 같은 인간의 양심을 행동으로 강제할 수밖에 없는 실패한 방법이라는 점은 역사가 증명해준다.

오히려 짧은 시간에 회사 가치가 올라가 회수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투자자 보호가 있을 수 있는지 하는 생각을 갖는 게 상식이다. 물론 플랫폼 사업자는 인수한 지분에 대해 일정 기간 보유할 것을 강제하는 것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속성상 타당한 규제라고 봐야 한다.

나아가 광고와 청약 권유 방법 규제는 제도가 가진 본질과 목적을 고려하면 자연히 도출될 수 있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 실시간 양방향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성립한 모델이라는 점, 기업 평가가 SNS 등 양방향 네트워크, 실시간으로 다중적 평가를 통해 이뤄지는 점을 고려하면 양방향 매체인 인터넷·SNS나 모바일을 통한 청약 권유나 광고 등은 제한 없이 허용되는 것이 본질과 목적에 부합한다.

결국, 이 제도 목적을 고려해 적용하고자 하는 대상에 따라 분리 대응하는 것이 타당하다. 일반적으로 적용 대상이 대기업, 상장기업, 각종 단체와 개인 등 보편적이고 다양한 사례에 적용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둔다면, 자본시장법에 규정해 투자자 보호를 염두에 두고 그 내용을 정하는 게 옳다.

반면에 그 목적을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한 벤처생태계를 완성하는 것으로 삼고자 하는 제한적인 대상을 염두에 둔다면, 이를 위한 규정은 특별법인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특별조치법’ 제14조의 2에 근거 규정을 두고 소액 엔젤투자자에 의한 벤처기업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중심으로 내용을 정함이 타당한 입법 방안이다.

SNS와 동영상 공유 등 일등 사업 모델 아이디어는 우리 벤처생태계에서 탄생했으나 성공은 페이스북이나 유튜브가 이룬 것도 공인인증서 사용 강제와 인터넷 실명제로 인한 갈라파고스화와 무관치 않다. 크라우드 펀딩 관련 법 개정 논의도 각계각층의 지혜를 모아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배재광 한국핀테크연구회장 law@cyberlaw.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