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임원이 되고나서부터 모셨던 상사는 모두 네 분이다. 정말 이 네 분 모두 존경한다. 이런 훌륭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홍복이라 본다. 이 분들로부터 경영을 보고 듣고 배웠다. 나중에 CEO할 때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면 조용히 눈을 감고 이 분들이었다면 어떻게 결정했을까 생각해봤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직장운이나 상사운이 대단히 좋았다고 자평한다.
이 네 분은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다.
우선 같은 점부터 살펴보면 첫째, 장수 CEO들이다. 이 분들은 거의 70세까지 직장 생활을 하신 분 들이다. 직장생활을 40년 이상하고 임원생활만 20년 이상 하신 분들이다. 이 분들은 창업자가 아니다. 재벌 2세는 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이상씩 CEO를 지낸 것을 보면 이 분들에겐 다른 뭔가가 있다고 봐야 한다. 오래 하셨기 때문에 업적이 탁월 한 것인지 업적이 좋기 때문에 오래 CEO 생활을 한건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선후관계가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둘째, 주인의식을 갖고 있었다. 오너가 아니었지만 스스로 오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분들이 회의나 결재를 할 때 보면 주인의식 만큼은 확실했다. 대부분의 월급쟁이 CEO가 그렇듯 잠시 머물다 간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다. 일반 사석에서 조차도 몇년 뒤면 회사를 떠날 거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어 보지 못했다. 적어도 이 분들과 근무하다 보면 이 분들은 평생을 CEO로 뛸 것 처럼 느껴졌다.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셋째, 경영목표는 기필코 달성했다. IMF가 오든, 리먼사태가 오든 경영목표는 책임지고 달성 했다. 모든 회사 업무에서 군더더기 없이 경영목표에 집중했다. 다른 경영자들이 경기 때문에, 날씨 때문에,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경영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변명할 때 이들은 미리미리 준비해서 경영목표를 달성했다. CEO를 오래하면 좋은 시절도 있고 나쁜 시절도 있다. 이들의 진정한 가치는 환경이 나쁠 때 남들보다 더 잘 한다는데 있다.
넷째, 일을 즐겼다. 오래 CEO를 하는 동안 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다. 때로는 정부와 각을 세우다 엉뚱한 일로 곤욕을 치르는 것을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CEO의 일을 즐겼다. 옆에서 보면 무지 피곤해 보여 개인적으로는 관두고 싶을 것이라 생각하고 얘기해 보면 천만의 말씀이다. 의외로 스트레스가 없었다. 이들은 주말 오전에 운동가는 날이면 오후에 잠시라도 사무실에 들렀다. 뉴욕 출장에서 돌아와 바로 사무실로 왔다가 퇴근했다. 일요일 오후 10시에 자택에서 임원회의를 소집하기도 했다. 새벽 3시에 전화해서 올해 매출 목표 달성 가능성을 물어 본 CEO도 있었다. 정말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때려 치고 싶다든지 쉬고 싶다는 푸념을 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업무를 의무가 아닌 재미로 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리 만무하다.
다섯째, 체력이 좋았다. 자기 관리와 건강관리가 철저하다. 연세가 일흔에 가까우면서도 꼿꼿하게 서서 5시간 동안 브리핑을 받았다. 본래는 한시간 반 브리핑을 하고 점심을 임원들과 같이 하기로 했었는데 질문과 설명이 길어져 점심도 거른 채 다섯시간 동안 R&D 설명회를 했다. 뒤에 서 있던 임원들은 슬슬 빠져 잠깐씩 쉬고 오는 데 CEO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여섯째, 끊임없이 공부했다. 새로운 앱이 나오거나 신문에 IT 관련해 뭔가 새로운 용어가 나오면 꼭 전화해서 물어 봤다. 그래서 직원들과 대화할 때 보면 정말 아는 것이 많았다. 인물, 역사, 지리, 미술, 음악, 자연과학 등 어떤 주제가 나와도 막힘이 없었다. 심지어 최신 건배사나 유머에 대해서도 아는 게 많았다. 이들은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어 평소에도 다양한 전문가들과 교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CEO들은 어떤 모임에서도 항상 대화를 주도하고 풍부한 유머로 대중의 이목을 이끈다. 그러면서도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일곱째, 검소했다. 공인으로서나 개인으로서 검소했다. 절대 사무실이나 집기를 호화스럽게 꾸미지 않았다. 우선 사무실 크기가 작고 실용적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양복이나 시계 등 개인 액세서리에서 사치는 거리가 멀었다. 모든 면에서 실리적이었다. 누구에게 보여 주고 위세를 떨치지 않았다. 어쩌면 이들은 스스로의 업적과 명성으로 이미 자신의 위엄을 갖췄기 때문에 다른 외양으로 자기를 과시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종합하면 주인의식을 갖고, 경영목표에 집중하면서, 일을 즐기고,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실용적 가치관을 갖는다면 당신도 장수 CEO가 될 수 있다.
CIO포럼 회장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