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의 그늘에서 늘 주눅들어 있던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세는 커질대로 커져있고 시장은 ‘대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을 거론하며 성장 둔화를 점칠 때, ‘도그마’(dogma)에 빠진 애플을 건져낸 구원투수가 바로 쿡 CEO라는 게 파이낸셜타임스(FT)의 평이다.
◇“곳간부터 챙겨라”
쿡 CEO가 잡스와 대별되는 특징 중 하나는 ‘숫자’에 밝다는 점이다. 항상 주주들과 대립각을 세우곤 했던 잡스와는 달리, 쿡은 일명 ‘시장 친화형 CEO’다.
실제로 그는 10일(현지시각) 샌프란시스코에서 골드만삭스 주최로 열린 ‘기술과 인터넷 콘퍼런스’에서 “우린 현찰을 쌓아두기만 하진 않을 것”이라며 “오는 4월 추가배당 계획을 발표할 것이고 인수합병(M&A)에도 전력할 것”이라고 말해 시장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이같은 그의 행보는 결국, 이후 연일 애플의 주가를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외신의 분석이다.
애플은 자사주 매입과 주주배당을 합쳐 연내 총 1000억달러를 주주들에게 풀 계획이다.
작년말 기준 애플의 현금보유고(현금 및 유동화 증권 포함)는 1780억달러(약 192조6000억원). 이 가운데 1578억달러는 미국외 자회사가 갖고 있다.
이같은 실탄을 바탕으로 회사채 발행과 자사주 매입, 배당금 지급 등은 물론 신사업 진출에 이르기까지 거침없는 전진을 계속하고 있다.
◇올해 인수합병(M&A) 주목
애플은 지난해 8건의 M&A를 성사시켰다. 전년 13건에 비하면 절대 건수는 줄었지만 헤드폰 전문업체 비츠일렉트릭을 30억달러에 사들이는 등 화학적 결합이 필요한 곳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애플이 M&A에 신경을 쓰는 것은 삼성전자 때문이다. ‘스마트 에코 시스템’이라는 무주공산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양사는 관련 우수기업을 하나라도 더 차지해야 주도권을 거머쥘 수 있다.
애플은 최근 클라우드 네트워킹업체인 유니온베이네트웍스를 전격 인수했다. 이밖에도 럭스뷰를 비롯해 북램프, 스내피랩스, 프라임센스 등도 애플이 상당 기간 공들여 인수한 업체들이다.
애플의 신사업을 보면 M&A의 윤곽을 어림할 수 있다. 애플페이를 통해선 핀테크 관련 기업들의 이름이 피인수 후보군 명단에 오르내린다. 자동차와 태양광 분야에서도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국 등지의 유력 스타트업이 거론된다.
애플의 곳간이 차고 넘치는 만큼 M&A와 연구개발(R&D)에 올해 사상 최고액을 배팅할 개연성이 높다는 게 주요 외신의 분석이다.
◇애플의 신규 포트폴리오, ‘자산 관리’
주가와 시가총액은 물론, 보유현금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글로벌 리딩뱅크 못잖은 규모의 유동 자산을 쌓아두게 된 애플에게 ‘돈’은 약이자 독이다.
애플의 보유현금 대부분은 국외에 있다. 고액의 미국내 법인세를 피한 절세의 일환이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이른바 ‘오바마 예산안’을 보면, 애플과 같은 글로벌기업의 해외소득과 유보금에 14%의 일률과세와 최고 19%의 별도 세금이 부과될 전망이다.
관리의 묘가 더욱 빛을 발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넘치는 곳간에도 불구, 최근 회사채를 발행한 애플의 숨은 전략에 금융전문가들도 혀를 내둘렀다.
애플은 지난 10일 스위스 채권시장에서 총 12억5000만 스위스프랑(약 1조5000억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이번 채권은 2024년 만기와 2030년 만기의 채권 금리가 각각 0.375%, 0.75%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스위스 국채는 만기 11년까지가 모두 마이너스 금리일 정도로 회사채 금리가 싸기 때문에 애플 입장에서는 이득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애플이 약속한 자사주 매입과 신규 배당급 지급일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낮은 채권 금리와 높은 회사 신용도를 활용, 보유 현금 한 푼 건들지 않고 신규 자금을 조달한 셈이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