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동해 일출을 보겠다며 한밤중에 집을 나선 적 있었습니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원도 경계를 지나는데 갑자기 나타난 짙은 안개 때문에 급제동하면서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습니다. 뒤따라온 차가 추돌할지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차가 많지 않고 서행했기 망정이지 다시는 밝은 해를 보지 못할 뻔 했습니다.
고속도로나 국도를 달리다보면 도로 옆에 주의운전하라는 안개지역 표지를 자주 봅니다. 그러나 그 뿐입니다. 무심코 표지판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다가 짙은 안개를 만나면 저처럼 급제동을 하게 됩니다. 고속주행이라도 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집니다.
지난 11일 오전 인천 영종대교 서울방향 12~14㎞ 지점에서 사상 최악의 106중 추돌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원인은 가시거리 10m밖에 안 되는 짙은 안개였습니다. 영종대교 구간에는 그 흔한 안개지역 표지판 하나 없었다고 합니다. 운전자가 주의운전해야 하지만 짙은 안개 때문에 갑자기 나타난 앞차를 피해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제 피해보상만하면 끝나는 걸까요. 피해보상을 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졸지에 목숨을 잃은 사람은 돌아올 수 없습니다. 해외 바이어와의 중요한 계약이 파기됐을 수 있고 차량 파손으로 인한 불편함도 큽니다. 보상보다 중요한 것이 사고예방입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영종대교에서도 구간단속을 실시한다는데 그게 근본적인 대책일까요.
안개로 인한 사고는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습니다. 안개감시 시스템과 안개를 제거해주는 연소탄 장치만 잘 연계하면 됩니다. 인천국제공항은 2006년 말부터 지비엠아이엔씨의 안개감시 시스템을 설치해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안개 농도에 따라 3단계로 나눠 대비합니다. 안개 농도를 측정해 일정 수준에 도달했을 때 안개를 걷어내는 연소탄을 터뜨렸다면 이번 영종대교 추돌사고도 없었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연소탄을 기상청 ‘기상 See-At 기술개발’ 사업으로 개발 완료했음에도 아직 적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연소탄은 비를 미리 내리게 해 중요한 행사 때 하늘을 맑게 해주는 인공증우 기능도 하지만 안개를 걷어내는 효과도 있습니다. 연소탄을 사용하면 반경 50m의 안개가 20~30분 안에 제거된다고 합니다.
국내에는 상습안개 지역이 많습니다. 특히 교량이나 터널 앞뒤는 안개로 인해 사고가 많은 지역입니다. 안개로 인한 해상사고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방법이 없다면 몰라도 피 같은 세금으로 개발한 기술이 있는데 전시만 하고 있어야 되겠습니까.
주문정기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