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계정 상속제를 도입하면서 글로벌 정보통신(IT) 기업들의 디지털 유산 정책이 화두에 오르고 있다.
최근 페이스북이 사용자 사망 시 계정을 미리 정한 ‘상속자’에게 물려주는 상속 기능을 도입하면서 각 IT기업들의 데이터 유산 처리 방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6일 전했다.
디지털 유산은 크게 계정과 데이터로 나뉜다. 미국에선 사망 시 데이터를 넘겨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있지만 계정을 양도하는 건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반된다. 이에 IT기업들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 차원에서 사망자의 계정이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 모두를 제한해왔다. 하지만 유족이나 고인의 친구들로부터 고인이 남긴 온라인에서의 흔적을 찾을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 급증하면서 구글에 이어 페이스북도 디지털 유산 상속제를 시작했다.
페이스북이 얼마 전 도입한 ‘상속 기능’은 이용자가 사후에 자신의 계정을 관리할 사람을 미리 지정한다. 사후 계정은 고인을 위한 사이버 추모관으로 사용되고 추모 글·사진을 남길 수 있다. 고인의 글을 수정·삭제할 수 없고 고인이 나눈 일대일 메시지나 비공개 글 등은 열람 불가다. 상속자의 계정 관리 권한은 양도할 수 없다. 이 서비스는 미국에서 시작한 뒤 전 세계로 확대할 계획이다.
구글은 지난 2013년 업계 처음으로 ‘휴면계정 관리 서비스’라는 디지털 유산 상속 제도를 도입했다. 사용자가 일정기간과 대리인을 최대 10명까지 정해 이 기간 이상 접속하지 않으면 사용자에게 먼저 관련 내용을 알려준 뒤 대리인에게 데이터를 이관할 수 있게 했다. 권한 상속자는 필요에 따라 계정을 지울 수도 있다. 이와 별도로 사망자의 개인정보 및 사망증명서, 고인의 가족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 등으로 법적 검토 절차를 밟으면 계정 소유권을 넘겨받을 수 있게 했다.
애플은 아이튠즈 계정의 별도 상속제를 시행하고 있지 않다. 사망 시 계정은 물론 계정 내 애플ID 및 콘텐츠 모두 양도할 수 없고 해지 처리된다. 다만 재산상속자가 사망진단서 사본과 재산 상속 권리에 관한 법률 문서를 제출하면 심사를 거쳐 계정을 완전 삭제할 수 있다. 데이터 접근 권한은 주지 않되 계정 삭제만 가능하게 한 셈이다.
야후도 마찬가지다. 야후 블로그를 통한 광고 수익이나 비트코인 등 관련 자산에 접근할 수 없고 이메일 등도 유족에게 넘기지 않는다. 게다가 인터넷 및 케이블 사업자 상당수가 자동 납부 계정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아 이들 업체에 사망진단서 및 제반 법률 서류를 일일이 제출해야한다. 부동산 업체 대표인 우드로우 레빈(Woodrow Levin)은 “마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의 모든 물건을 불태워버리는 것과 같다”며 “그래도 사유지는 그대로 남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유족의 요청이 있을 경우 이메일, 주소록, 첨부파일 등을 DVD형태로 제공한다.
이처럼 외국계 업체들이 대개 계정 관리 권한은 주지 않되 데이터 일부에 접근할 수 있게 한 반면 국내 업체들은 아직 이같은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고 있다. 이번 상속제 도입이 개인 프라이버시와 디지털 유산 상속권을 효과적으로 메웠다는 평가가 이어지면서 국내 업계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주목된다.
국내에선 디지털 유산 관련 법안이 따로 없어 각 업체별 정책에 따르고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이용자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없게 규정해놓은 상태지만 이를 사망 등 구체적 사례에 적용하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네이버, 다음카카오 등이 속한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서는 “상속인에게 피상속인의 계정 접속권을 원칙적으로 제공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네이버는 네이버 계정의 사용권리를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상속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카페나 블로그 등에 공개된 게시물의 경우 대신 백업해 유가족에게 제공하나 비공개 글은 접근이 금지된다. 계정 해제 및 탈퇴 등은 법적 절차를 거치면 가능하다.
다음카카오도 이용자가 사망해도 유족에게 계정 및 데이터 접근 권한을 주지 않는다. 상속인이 사망자의 계정을 폐쇄하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현금성 가치가 있는 일부 콘텐츠는 법적 확인을 거쳐 상속인에게 이관할 수 있다.
김주연기자 pilla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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