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공정경쟁 환경 조성을 위한 ‘유료 방송 합산 점유율 규제 도입’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방송 산업은 공공〃공익성과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국 사회의 성장과 성숙을 뒷받침해왔고, 이런 가치를 지키기 위해 방송법은 발전해 왔다.
현행 방송법과 IPTV 사업법에선 특정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독점을 막고, 이를 통해 여론의 다양성 확보와 매체 간 균형발전을 위해 가입자 점유율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위성방송과 IPTV사업권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는 KT그룹의 가입자 점유율 확대를 현행 법·규제 틀에서는 통제할 수 없다.
이런 법·제도가 지속되면 중소 방송사업자는 시장 퇴출의 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고, 이는 곧 거대 방송〃통신그룹의 독과점을 용인함으로써 방송의 공공〃공익성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문제를 풀고 ‘동일 역무에 대한 동일 규제’ 적용의 대명제를 달성하면서 궁극적으로 방송의 공공〃공익성을 도모하는 것이 바로 ‘유료 방송 합산점유율 규제’ 도입이다.
최근 합산점유율 규제 개선 반대 진영에서 나오는 주장을 보면 방송의 사회적 기능을 무시한 채, 압축성장 시대에나 어울릴 만한 ‘경쟁과 적자생존’이란 논리를 앞세운다. 우리나라 유료방송 시장은 케이블방송과 IPTV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KT가 경쟁기업들을 따돌리고 독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사업자가 전국 사업권을 가진 두 개의 방송 플랫폼을 소유한 것은 세계 방송 시장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를 바탕으로 KT는 타 사업자들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위성방송과 IPTV를 결합해 시장을 공략하면서 단기간 내 유료방송시장의 맹주로 떠올랐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4년간 KT는 매달 8만명, 연간 90만명이 넘는 가입자 평균 순증을 기록했다. 포화된 유료방송 가입자 시장을 감안해 단순계산을 하면, 가입자 20만 정도의 중소케이블사업자(SO)가 매년 4~5개씩 사라지는 셈이다.
지금 추세라면 거대 방송·통신그룹과 경쟁해야 하는 지역 중소케이블 방송사는 존폐 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고, 대형 케이블사업자(MSO)도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유료방송시장의 독과점은 당장 플랫폼과의 계약으로 방송채널을 송출하는 콘텐츠사업자(PP)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유료방송 독과점 사업자는 방송콘텐츠 시장에서 특정 채널과 계약 여부와 채널번호 부여를 결정하며 무소불위의 미디어 권력으로 작동한다. 이는 콘텐츠사업자의 절대적 협상력 저하를 의미하며, 방송콘텐츠 시장의 위축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방송 콘텐츠를 누려야 하는 시청자의 권익도 저해할 것이 분명하다. 유료방송시장의 독과점으로 인한 폐해는 바로 방송 산업 생태계의 선순환 고리가 끊어진다는 의미다. 일반 산업과 달리 공공·공익성이 중시되는 방송 산업은 이러한 폐해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다양한 제도적 안전장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 왔고, 현재 입법 논의가 진행되는 ‘합산 규제’ 또한 같은 맥락이다.
‘합산 규제’는 특정 사업자가 IPTV, 위성방송, 케이블TV 등 전체 유료방송 가입자의 3분의 1을 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 골자며, 유일하게 위성방송이 이 법안에서 누락돼 있어 이를 개선해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를 적용하자는 취지다.
혹자는 경쟁을 거쳐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사업자가 살아남고, 경쟁력 없는 사업자가 도태되는 것은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라고 주장한다. 경쟁력 있는 사업자가 가입자의 선택을 받아 시장을 독식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따질 수도 있다. 이러한 주장은 경쟁의 결과가 방송 산업 생태계와 방송시장 전체를 성장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시청자와 소비자 권익이 향상될 때만 유효하다.
가입자 기반의 시장에서 쏠림 현상이 한 번 일어나면 건강성을 회복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우리나라 유료방송 시장은 특정 기업의 독과점 구조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방송시장이 가진 특수성을 감안할 때 다양성과 공익·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 그것이 지금 논의되고 있는 ‘합산 규제’다.
한상진 씨앤앰 전략기획실장(전무) sjhan@cn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