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에 뜨는 키보드를 실제 키보드처럼 느낄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 뇌가 손가락으로 촉각 정보를 읽어들이는 방식에 관한 획기적 연구결과가 발표됐기 때문이다.
노스웨스턴 대학과 카네기멜론 대학 공동 연구진은 최근 햅틱 환상(haptic illusion) 현상을 기반으로 뇌가 손가락으로부터 정보를 읽어들여 이해하는 방법에 대한 논문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했다.
햅틱은 키보드나 마우스 등 기기를 통해 질감, 온도 등 촉각이나 힘, 운동감을 느끼게 하는 기술이다. 국내에선 스마트폰에 적용해 터치스크린에 있는 키패드를 누를 때마다 기기가 진동하게 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가상현실(VR) 구현 등에 접목되면서 주목받고 있다.
논문의 공동 저자이자 터치 기반 햅틱 시스템 전문가인 에드워드 콜게이트 노스웨스턴대학 교수는 “우리는 터치로 실제 사람들이 스크린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만들길 원한다”며 “이번 연구는 평면 스크린에서 햅틱 지각 시스템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표현 햅틱’ 기술 연구의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뇌가 여러 손가락으로부터 온 정보를 어떻게 융합해 인식하는지 보고자 햅틱 기술을 응용했다. 손가락에 힘을 줘 평평한 표면을 따라 만지면 사람들은 표면에 마치 돌기가 형성돼있는 것처럼 느낀다. 일명 ‘가상 돌기 환상(virtual bump illusion)’ 현상이다. 연구의 첫 번째 저자인 스티븐 마뉴엘이 이 모델을 발전시켜 시공간의 변화에 따라 두 손가락으로부터 읽어들인 감각 신호들이 뇌가 표면을 인식할 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실험은 이렇게 진행됐다. 햅틱 기술과 새로운 수학적 모델을 도입해 두 개의 가상 돌기를 만들고 두 돌기 사이 거리를 조절했다. 그 결과 두 가상 돌기를 각각의 손가락이 동시에 만졌을 때 피실험자는 이를 하나의 돌기인 것처럼 인식했다.
이를 활용해 평면 스크린에도 독특한 질감 등을 느낄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를테면 화면에 있는 키패드를 누를 때 진짜 키보드처럼 인식하게 하는 식이다. 향후 시각장애인용 기기나 차량 대시보드, 비디오게임 등 햅틱(Haptic) 기술이 들어간 여러 응용처에 쓰여 사용자환경(UI)·사용자경험(UX) 등을 크게 개선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단 평가다.
연구의 공동 저자인 로베르타 클라츠키 카네기멜론대학 교수는 “표면 햅틱 기술을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선 사람이 터치스크린을 만질 때 어떤 종류의 자극이 평평함이 아닌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며 “이번 연구는 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김주연기자 pilla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