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영국 타임스고등교육(THE)은 대학의 국제화 달성 지표평가 결과를 토대로 세계 100대 대학을 선정해 그 순위를 발표했다. 개인적으로 놀란 점은 우리나라 언론이 이 내용을 다루지 않았다는 것과 우리나라 대학은 100대 대학 순위에 단 한 개도 포함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톱 15에는 1위인 EPFL을 비롯해 스위스 대학이 5개로 가장 많았다. 런던대를 포함해 옥스퍼드 등 영국의 대학이 3개로 뒤를 이었다. 오스트리아, 싱가포르, 호주는 각각 2개 대학이 이름을 올렸고, 프랑스는 1개 대학이 뽑혔다.
스위스의 대학은 1위는 물론이고 2위 제네바대, 3위 스위스 연방공대까지 톱3를 휩쓸었다. 미국 대학은 톱15 내에는 들지 못했으나 46위를 차지한 MIT 등 여러 대학이 100대 대학에 포함됐다.
이번 THE의 대학 국제화 달성 지표는 교수진과 학생의 국제 교류 협력 활동에 관한 13개 항목을 계량화해 산정했다. 외국 국적 교수진의 비율, 외국 유학생 비율, 국제저널 연구 논문의 외국인 공저자 비율 등이 주요 항목이다.
미국 대학들이 톱15에 들지 못한 주된 이유는 수많은 외국 출신의 인재가 이미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취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실상 미국 대학은 국제화 측면에서는 세계 최고라 볼 수 있다.
대학의 국제화가 곧바로 그 대학의 우수성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 역량을 강화하고 혁신적 연구 성과를 도출하는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과학기술은 국가 번영의 성장엔진이므로 이의 발전 없이는 국가 번영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 발전 계획에서 우수 과학기술자를 충분히 양성하거나 확보하기 어렵다면 외국의 유능한 과학기술자를 초빙해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미국은 해외 천재 과학기술자를 초빙해 활용하기 위한 H1B 비자 제도를 갖고 있다. 미국의 번영에는 바로 이 H1B 비자로 초빙된 외국 출신 천재 과학기술자들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최근 미 의회는 H1B 비자 제도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뺏는다며 외국 출신 과학기술자의 초빙을 제한하는 법안 제정을 시도했다. 이에 월스트리트저널 등 언론은 H1B 비자 제도를 없애면 미국 경제는 붕괴하고 말 것이라 경고했다. 구체적인 사례로 월가의 복잡하고 고도로 전문화된 일을 예로 들며 이 같은 업무가 당장 마비될 것이라 주장했다. 이런 반대 여론에 H1B 비자를 제한하는 법안 시도는 결국 무산됐다.
영국도 외국 출신의 탁월한 재능 보유자를 초빙해 활용하기 위한 티어(Tier)1 비자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초빙 대상자의 탁월한 능력과 활용가치는 대개 왕실아카데미 심의위원회 등에서 정밀하게 평가해 결정한다.
대학 국제화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거둔 스위스, 오스트리아, 싱가포르 등은 좁은 국토와 작은 인구수라는 공통적 약점을 갖고 있지만 또한 강소국으로 인정받는 나라다. 국제화를 통해 외국 출신의 우수 인재를 받아들여 널리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폐허에서 단기간에 세계 15위권의 경제 대국을 이룬,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양적·질적으로 빠르게 성장한 나라다.
앞으로 세계 10위권, 나아가 세계 5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발전하려면 국내 인재나 자국 출신 인재만으로는 부족하다. 해외의 천재적 과학기술자를 널리 발굴하고, 이들을 초빙해 활용할 수 있는 종합적인 방안을 보다 적극적으로 강구해 나갈 시기다.
백점기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런던대 석학교수) jeompaik@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