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경제학은 생산의 3대 요소로 토지, 노동, 자본을 꼽는다. 최근 벤처기업이 늘면서 사람, 기술, 자본을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토지든 노동이든, 사람이든 기술이든 자본이 있으면 모두 확보가 가능해진다. 실제로 시장에서 가장 위력적 생산동력의 본질은 자본이다. 콘텐츠산업의 생산활동도 예외 없이 자본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더구나 후발산업이기 때문에 시장의 금융관행과 잘 맞지 않아 콘텐츠 기업들은 여전히 자금 확보에 많은 애로를 겪는다.
일반적으로 생산에 필요한 자금은 부동산 같은 담보가 있어야 제공됐다. 전통적 상품을 성공적으로 팔아온 기업은 신용으로도 돈을 융통할 수가 있다. 그러나 생물적 생존의 필수품이 아닌 콘텐츠 제품은 사정이 다르다. 성공하면 큰돈을 벌 수 있지만 성공 확률은 지극히 낮아 보인다. 신참인데다 손에 딱 잡히지 않아 금융시장의 낯가림이 심하다. 영화 시나리오나 뮤지컬의 악보나 애니메이션의 밑그림을 담보로 선뜻 돈 내주기를 꺼린다. 전도양양한 콘텐츠기업들이 겪는 고통과 좌절은 상상을 초월한다.
콘텐츠산업은 세계경제에서 비중이 날로 커지고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로로 떠올랐다. 콘텐츠기업 육성이 당면과제가 되고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청 모태펀드에 문화계정과 영화계정을 두고 콘텐츠분야 투자를 독려하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 작년까지 10년 동안 문화계정 1575건, 영화계정 132건 등 총1707건, 연평균 170건의 투자가 이뤄졌다. 작년부터 문화부는 문화계정을 위풍당당콘텐츠펀드로 보강해 투자확대에 나섰다. 아울러 문화부와 기술보증기금은 2009년부터 작년까지 6년 동안 총177건, 연평균 30건의 완성보증을 지원했다.
우리나라 콘텐츠산업은 4×10 구조다. 약 10만개의 관련기업이 있다고 하지만 이들의 95% 내외가 자본금 10억원 이하고, 종업원은 10인 이하며, 연매출은 10억원 이하일 정도로 지극히 영세하고 열악하다. 기존 모태펀드나 완성보증 규모로 금융애로를 풀기는 역부족이다. 혜택 받는 기업은 극소수고 절대 다수는 접근조차 어려운 형편이다. 설립 1년 남짓한 한국콘텐츠공제조합의 지난해 보증건수는 330건이다. 연평균 완성보증건수의 11배가 넘고, 콘텐츠 모태계정 투자건수의 2배에 상당한 실적이다. 건당 지원 규모에 편차가 커 평면적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당장 한 모금의 물을 원하는 영세 콘텐츠기업이 많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공제보증이 자금절벽의 극복 수단으로 떠오르고 잠재수요가 큰 함의는 결코 가볍지 않다.
건당 평균 8억5000만원의 모태계정 콘텐츠투자, 건당 평균 9억7000만원의 기보 완성보증, 그리고 건당 1억원 내외의 한국콘텐츠공제조합 이행보증은 저마다 존재 이유가 있고 고유 기능을 가졌다. 이들 세 가지 기능이 삼각편대를 만들고 조화를 이룰 때 콘텐츠기업의 금융애로는 효과적으로 완화된다.
문화부는 올해 모태펀드 문화계정에 2000억원 규모의 위풍당당 콘텐츠코리아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한중문화산업공동발전 등 6개 분야에 출자할 방침을 밝혔다. 완성보증에는 50억원을 추가 출자키로 했다. 그리고 한국콘텐츠공제조합에는 영세 콘텐츠기업 종사자를 위한 안전망 사업으로 이자 지원자금 10억원을 배정했다.
루퍼트 머독은 콘텐츠가 없는 ICT나 미디어는 빈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21세기 핵심산업을 텅 빈 그릇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콘텐츠산업에 대한 획기적 지원은 필수다. 그러나 현실은 겉과 속이 다르고 아쉽기만 하다. 정부의 콘텐츠기업에 대한 배려는 제조업에 비해 턱없이 빈약하다. 영세 콘텐츠기업들은 영세한 자본금으로 만든 일천한 공제조합에 의지하면서 보릿고개를 넘어가야 하는 비상한 국면을 맞았다.
한국콘텐츠공제조합은 올해 1000억원, 2016년 1500억원, 2017년 2500억원 등 3개년 5000억 원 규모의 이행보증에 나설 계획이다. 바라건대 올해 조합이 지정기부금기탁기관이 되고, 더 많은 자본금이 확보돼 공제보증을 확대하고, 공제융자 또한 늘어나기를 기대해본다.
김종민 한국콘텐츠공제조합 이사장(전 문화부 장관) kimzongm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