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번호(주민번호) 개편작업이 진통을 겪고 있다. 정부 개인정보 보호 대책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주민번호 변경 허용 폭을 넓혀 개인 정보의 자기 결정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다.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인정보 유출사고 1년, 주민등록번호제도 개편 잘 되고 있나?’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당장 지난해 8월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개인정보보호 정상화 대책 실효성이 도마에 올랐다.
신훈민 진보네트워크 변호사는 “행자부는 주민번호 주관 부처임에도 주민번호 유출 문제점, 개편 필요성, 변경 허용 등에 대한 설명이 부실하다”며 “주민번호 제도를 보는 안일한 시각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카드 3사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발생한 때는 지난해 1월이다. 정부는 즉시 주민번호 제도 개편 논의에 착수했다. 이후 8월 개인정보보호 정상화 대책을 내놓았다. 12월에는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주민번호가 유출돼 중대 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인정되는 사람은 변경 신청이 가능하다. 문제는 엄격한 변경 사유다.
이혜정 법무법인 동화 변호사는 “생명·신체 또는 재산상 중대한 피해라는 것은 매우 엄격한 요건”이라며 “이는 행정기관 재량권 여지와 자의적 판단을 가능케 해 실효성이 반감된다”고 말했다. 또 “국민 피해 정도를 예측할 수 없고 소액의 재산 피해는 신청이 거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민번호가 대량으로 유출될 때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수많은 변경 요청이 몰려 사회적 혼란을 초래한다.
정부 개편안에 앞서 주민번호 개선자문단에서 현실적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개편안에는 반영되지 못했다. 김기중 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 변호사는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는 “지난해 자문회의에서 신규번호 발행, 증발행번호 발행, 또 이 둘을 조합하는 방법 등 구체적 대안이 제시했다”며 “대안 장단점과 소요 비용까지 발표했지만 개정안에는 빠졌다”고 토로했다.
다양한 계층에서 정부 주민번호 개정안을 우려한다. 정부안에 비해 개선된 의원법안도 발의되고 있다. 때문에 개선된 의원법안을 다시 검토하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정부는 이에 대해 미온적이다. 후속 대책도 제자리걸음이다. 정부는 현 제도가 바뀌면 사회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주민번호 변경이 범죄자 신분세탁 등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김종한 행정자치부 주민과장은 “주민번호 변경 요건이 까다롭다는 지적이지만 갑작스런 변경은 또 다른 혼란과 문제점을 불러온다”며 “제한적으로 시행하면서 허용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카드3사 개인정보 유출사고 이후 국회의 주민등록법 일부개정안 발의 현황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