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열린 ‘CES 2015’에서 가장 관심을 끈 기술 중 하나는 3D 프린팅이었다.
3D 프린팅 기술은 30여년 전 3D시스템스의 공동설립자인 찰스 헐이 최초 발명한 후 주로 시제품 제작에만 사용되다 최근엔 소재 등 관련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실제로 부품을 제작하는 등 상용화 길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제조업의 혁명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이에 맞춰 정부도 전통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한 ‘스마트 공장’과 같은 새로운 방식의 제조업을 목표로 ‘제조업 혁신3.0 전략’을 발표하면서 3D 프린팅 기술 개발을 본격 추진 중이다.
그러나 3D 프린팅 분야의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그동안 3D 프린팅 공정방식 원천특허를 보유 중이던 미국 3D시스템스와 스트라타시스는 특허 장벽을 쳐 시장의 신규 진입자를 차단, 산업용 3D 프린터 시장의 75%를 과점했다.
지난해 11월 한국지식재산전략원이 내놓은 특허분석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출원인의 3D 프린팅 특허 출원량은 미국, 일본,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에 이어 세계 6위 수준이다. 절대적인 수에서도 미국의 5.1%, 일본의 11%에 불과한 실정이다. 특히 출원된 특허 대부분이 국내에 집중돼 있고 해외시장 진출을 목표로 한 외국출원도 22건에 불과할 만큼 우리나라의 3D 프린팅 기술의 특허경쟁력은 매우 낮은 상황이다.
이러한 시장구조에서 최근 3D 프린팅 공정에 관한 원천특허가 하나 둘 만료되면서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최근 시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100만원 내외의 3D 프린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이 쉽게 사용하기 어려운 고가 장비였다. 지난 2009년 수지 적층 방식(FDM)이라는 폴리머를 기초로 한 공정방식 원천특허가 소멸되면서 시장 진입 장벽이 낮아져 오늘날 가정용 3D 프린터 시장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게 됐다. 소멸특허가 시장의 신규 진입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셈이다.
작년엔 이런 금속을 이용해 좀 더 정밀하고 강도가 높은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직접식 금속 적층방식(DMLS)이라는 3D 프린팅 공정방식의 원천특허가 만료됐다. 이 기술이 보편화되면 기존 전통 제조업의 핵심인 주조나 금형산업에 획기적인 변화, 이른바 ‘금속 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3D 프린팅 기술의 후발주자인 우리 기업에도 이제 막 소멸된 금속소재 원천특허가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선 훌륭한 글을 베껴 쓰는 것부터 시작하듯 이제 막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는 기업은 기존 기술을 학습하고 체화해야 한다. 소멸된 원천특허는 그런 기업들에 부담 없이 활용할 수 있는 좋은 학습도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학습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차별화되고 창조적인 모방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 소멸된 특허를 철저히 분석해 더하거나 빼거나 섞거나 남이 하지 않는 새로운 변화를 주면 그것이 우리만의 원천특허가 될 수 있다.
이런 취지로 특허청은 소멸된 원천특허를 특허분쟁 걱정 없이 제품 및 기술개발에 사용하는 것을 돕기 위해 올해부터 ‘소멸특허의 공공이용 확산 지원사업’을 마련해 추진한다. 이 사업은 소멸특허를 활용하는 경쟁사와 응용특허를 분석해 새로운 기술개발 방향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들은 제조업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제조업 르네상스 부활에 힘쓰고 있다. 우리 정부도 제조업 역량 강화를 통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3D 프린팅 소멸특허를 활용한 전략적 접근이 우리 제조업 혁신에 새로운 길을 열기를 기대해본다.
이준석 특허청 차장 jslee6044@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