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부터 대학 강단에 선다. 과목은 정보유출 사례연구다. 이제까지의 정보유출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기업들이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정보유출의 위험성을 낮추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학생으로서의 경험에 비춰보면 첫 강의를 어떻게 하는지가 한 학기를 결정한다. 일단 학생들이 들을 만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고민하다가 정보유출의 원인과 대책을 공부하기 위해선 IT가 그동안 어떻게 발달돼 왔고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IT가 발달하면 할수록 보안의 중요성도 증대되기 때문이다. 돌려 얘기하면 데이터가 중앙 서버에 집중되지 않았다면 정보 보안의 심각성도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IT의 발달이 사회에 끼치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여러 자료를 수집하던 중에 레이 커즈와일이라는 사람을 알게 됐다. 지금 67세로 구글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팀을 이끌고 있다. MIT 출신이며 에디슨 이후 가장 탁월한 발명가로 알려져 있다. 레이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레이가 예측한 것들이 30년 동안 85%나 맞아떨어진 점이다. 147개를 예측해 126개가 맞았단다. 웬만한 점쟁이보다 확률이 훨씬 높다. 그러니 레이가 미래사회를 예측한 것에 관심과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다.
몇 가지를 정리하면 우선 2020년 후반 가상현실이 매우 현실화돼 재택근무가 보편화될 것이다. 둘째 2020년께에 유전자 조작으로 줄기세포를 만들어 인체기관의 재생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셋째 2030년 후반에 뇌 정보를 그대로 컴퓨터에 업로드하게 될 것이다. 넷째 2040년대 초에 분자 단위로 물체를 조립하고 해체하는 수준의 나노기술을 이용해 신체를 아예 마음대로 개조하게 될 것이다. 다섯째 모든 인류의 지적 능력을 합친 것보다 지적 능력이 더 높은 컴퓨터가 2045년께 나올 것이다. 여섯째 궁극적으로는 모든 인간은 기계와 항상 연결돼 있어 기계가 곧 인간이고 인간이 곧 기계인 시대가 펼쳐질 것이다. 레이가 모든 질병이 2040년이면 극복된다고 하니까 말대로라면 우리 모두가 수혜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의식과 기억이 서버의 한 영역에 자리 잡고 있어 영원히 죽지 않고 의식과 기억으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이때가 되면 인류가 죽음을 극복하고 영원히 살기 때문에 종교도 소멸하게 될 것이라고까지 예측했다.
사실 하루하루 회사일 하면서 정신없이 사는 사람들 입장에선 레이의 미래사회 예측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할 수도 있다. 지구 한편에선 많이 먹어서 비만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있고, 또 한편에서는 아사하는 사람도 있다. 기술 발전이 모든 나라 모든 사회에 보편적으로 골고루 혜택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불균형도 기술 발전을 선의로 잘 활용한다면 구석구석 혜택을 받는 기술전파 속도가 예전보다는 훨씬 빨라질 것이다.
레이가 예측하는 미래사회 중 만약 80%가 아니라 50%라도 이뤄진다고 가정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하는가? 올해 CES에서 무인자동차, 스마트워치, 3D 프린터, 드론이 주목을 받은 것을 보고도 미래가 지금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내일과 내년에 무슨 일이 있을지 잘 모르기는 하지만 방향만은 알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속도지 정보기술의 발전 방향은 어느 정도 예측 할 수 있다. 레이의 예측은 그 중의 하나일 뿐이다.
만약 방향이 맞다면 미래를 위해 준비를 해야할 텐데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우리의 기업, 사회, 국가, 법률, 환경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지금의 청소년 대학생들이 사회에 나와서 이런 급격한 변화 속에서 적응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컴퓨터가 인간을 능가하는 특이점을 2045년경에 본다면 우리 손자들이 막 사회에 나올 때인데 그때를 위해 지금 손자들에게 어떤 교육을 시키고 있는가?
지난주 칼럼에서도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경영철학과 방식을 기성세대들이 겸허하게 배워야 한다고 썼다. 답답한 현실에서 고개를 들고 조금 멀리 내다본다면 지금 세상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다시 레이의 말에 따르면 인간 유전자 게놈의 처음 1%를 해독하는 데 7년 걸렸는데 나머지 99%를 해독하는 데 7년 걸렸다고 한다. 그만큼 기술 발전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특히 IT를 주력으로 한 경영에서는 지금의 경영 스피드에 만족해선 안 된다. 공을 따라다니지 말고 공이 올 곳에 미리 가 있어야 한다. 우리 국가, 사회, 기업, 청소년들도 30년을 내다보고 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 질 젊은 세대들이 과연 레이가 얘기하는 사회에서 생존하고 나아가 변화를 주도적 이끌어가기 위해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걱정된다.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일본에서 유신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문 닫고 있다가 결국엔 나라를 빼앗겼다. IT 분야에서 무지 빠른 속도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달을 안 보고 손가락 끝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CIO포럼 회장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