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선전 공항에는 한국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중국 디스플레이 제조사인 CSOT에 들렀다가 티안마로 이동하는 사람들로 꽉 차 있습니다.”
“많은 국내 장비 업체 영업 담당자들이 수주를 이끌어 내기 위해 BOE 공장 근처서 죽치고 있습니다. 출장이라기보다 중국에 살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정도입니다.”
최근 국내 디스플레이 관련 장비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신규 투자 대부분이 중국에 쏠리면서 중국 고객 확보에 ‘올인’하고 있다. 올 상반기 수주 여부에 따라 올해 전체 실적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투자는 가뭄에 콩 나듯 드물지만 중국시장은 연일 장비 입찰 공고가 뜰 정도로 신규 장비 투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글로벌 최대 시장인 중국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장비 업체들이 더욱 기를 쓰고 고객 확보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국 디스플레이 시장, ‘쓰나미’ 설비 투자
지난 1, 2월 중국 디스플레이 시장은 뜨거웠다. 시장 활기를 이끈 주역은 BOE·티안마·CSOT 3대 메이저 디스플레이 제조업체 모두였다. 특히 티안마와 CSOT는 엇비슷한 시기에 6세대 신규 저온폴리실리콘(LTPS) LCD 공장까지 건설하면서 대규모 신규 장비 구입에 나서 주목받았다. CSOT는 지난 1월 우한 지역 공장건설 입찰을 냈고, 2월에는 이 공장에 들어갈 설비 입찰에 나섰다. 신규 공장 생산량은 유리 기판 투입 기준 월 3만장이다.
티안마는 한 달 늦은 지난달 6세대 LTPS 공장 건설 입찰을 냈고 이달을 기점으로 추가 설비 투자를 연이어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공격적으로 생산 규모를 늘리고 있는 BOE 역시 올해에도 신규 투자를 이어갔다. 지난 두 달간은 베이징·충칭·허베이·청두에 있는 공장에서 골고루 장비 구매에 나섰다. 이 가운데 베이징 BOE는 8.5세대 TFT LCD 부품 12만장(원장 투입 기준) 규모 라인 증설에 나서면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BOE는 지난 두 달간 총 39건의 입찰 공고를 냈다.
다만 OLED 증설 투자는 아직 재개되지 않고 있다. 당초 지난해 연말께 오르도스 지역 B6 공장의 2단계 증설 투자가 예상됐지만 올해 상반기로 미뤄졌다. OLED 패널의 낮은 수율문제와 B6 공장의 사장 교체 등으로 추가 신규 투자에 신중을 기하면서 기존 계획된 일정 보다 늦어지고 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 상반기 BOE의 증설 투자가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장비 업체들의 수주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이라며 “사실상 1단계 투자에서 국내 장비 업체들이 큰 수혜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2단계에서라도 기회를 잡기 위해 더욱 고군분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외에도 CEC 판다도 지난 2개월간 12건의 설비 구매에 나섰고, IVO도 얼라인먼트장치 등 장비 입찰에 나섰다.
◇국내 장비 업계, 중국 수출 비중 급증
중국 디스플레이 제조 업체들의 설비 투자가 상반기까지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장비 업체들의 중국 시장 의존도도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에 따르면 2012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장비업체의 전체 판매 대수 중 중국 패널 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23.1%였다. 이후 중국 업체들이 정부 디스플레이 산업 지원 정책에 힘입어 신규 라인 증설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2013년부터 비중이 크게 늘었다.
2013년 국내 장비업체의 중국 판매 비중이 61.5%로 늘어났고 국내 판매 비중은 38.5%로 줄었다. 지난해에는 무려 96.1%까지 중국 점유율이 치솟았다. 올해 역시 지난해와 비슷한 90%대의 높은 점유율을 기록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2~3년간 중국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국내 패널 업체에 대한 국내 장비 업체의 의존도는 낮아지면서 중국 현지 법인과 서비스 센터 인력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특수 기대감이 ‘신기루?’
반면에 중국 디스플레이 시장에 기반이 없는 신생 장비 업체들은 고객 확보를 위한 무기로 ‘싼 가격’을 내걸고 있다. 이들은 시장 평균거래가보다 50% 이상 대폭 낮추거나 무상으로 지급하는 사례까지 생겨 국내 업체 사이에서도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부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는 중국 시장 진출이 어렵다고 판단, 반도체 장비 사업에 뛰어드는 곳도 있다. 모든 업체들이 중국 시장에 올인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자 수익 차원에서는 크게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반도체 시장은 디스플레이 시장과 달리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장비 라이프 사이클도 상대적으로 더 길기 때문에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디이엔티, 로체시스템, 에이앤아이 등이 반도체 사업 비중을 늘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수조원대의 중국발 특수가 신기루로 그칠 것이라는 비관적인 시각도 있다. 이미 지난 2010년 중국 패널 업체들이 8세대 투자에 본격 나서면서 큰 수혜를 기대했지만 핵심 장비 대부분을 미국, 일본 업체에 내줬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노광기나 화학증착장비(CVD)와 같은 핵심 공정 장비 수주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패널 업체들이 핵심 장비는 높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안정성이 확보된 미국, 일본 장비를 여전히 선호하고 있다”며 “이번 특수에 국내 장비 업체들이 주류 장비 시장에 얼마큼 진입하는지에 따라 국내 업체들의 위상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