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8>김오수 대검 초대 과학수사부장

김오수 검사장은 “세계 최고의 과학수사가 목표” 라며 “대검 과학수사부가 과학수사의 종결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김오수 검사장은 “세계 최고의 과학수사가 목표” 라며 “대검 과학수사부가 과학수사의 종결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범인은 현장에 증거를 남긴다.

2000년 7월 27일 오후 3시 반께.

부산 동래구 온천동 A게임장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화장실에 가는 게임장 환전업무 담당 S씨(39·여)를 뒤따라가 흉기로 목과 얼굴 같은 8곳을 찔러 살해하고 현금 15만원과 60만원 상당의 반지가 들어있는 가방을 빼앗아 달아났다.

범인은 시신을 대변실에 밀어 넣고 수돗물과 대걸레로 핏자국을 씻어내는 치밀함을 보였다. 경찰은 현장 감식에서 대변실 문에 묻어 있는 혈흔 지문을 제외하고는 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다. 주변에 CCTV도 설치돼 있지 않았고 목격자도 없었다. 경찰은 혈흔이 묻어 있는 문을 가로 세로 30㎝ 크기로 잘라 과학수사센터 체증계로 넘겼다. 당시 지문검색기술로는 혈흔 지문만으로 범인을 특정할 수 없었다.

묻힐 뻔한 이 사건은 2012년 첨단과학수사 기법으로 전환점을 맞았다. 보관했던 혈흔지문을 재감정한 결과 부산에 사는 S씨(남)의 주민등록발급신청서 손가락 지문과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S씨를 강도살인혐의로 구속기소했다. S씨는 A게임장에 간 적도 없고 사람을 죽인 일도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1심 재판부는 2014년 2월 범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범인은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인 부산고법은 그해 7월 이를 기각했다. 범인은 다시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그해 10월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과학수사가 망자(亡者)의 14년 한(限)을 풀어주는 순간이었다. 진실은 하나였다.

대검찰청 초대 과학수사부장 김오수 검사장은 미제로 남을 수 있었던 강도 살인범을 검거한 것은 첨단 과학수사기법 덕분이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검찰은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지만 네 번이나 기각 당했다. 법원이 자신이 없었던 거다. 첨단과학수사와 관련해 기억에 남는 사건이다.”

그는 2013년 부산지검 차장검사로 이 사건을 총괄했다.

김 검사장을 3월 3일 오후 대검찰청 730호 과학수사부장실에서 만났다. 갈수록 지능화하는 첨단 범죄에 대한 검찰의 대응이 궁금해서다. 그는 예상과 달리 부드럽고 표정이 해맑았다.

김 검사장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30회 사법시험(사법연수원 20기)에 합격한 후 군법무관을 거쳐 법조계에 입문했다. 인천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대검 검찰연구관, 인천지검 특수1부장, 대검 범죄정보1담당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부산고검 1차장검사, 서울고검 형사부장을 차례로 거쳤다.

"사건이 발생하면 검찰이 기소권을 행사한다. 하지만 과학적인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소가 어렵다."
 김오수 부장의 목표는 `뛰는 범인 위에 나는 첨단과학수사부`가 되는 것이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사건이 발생하면 검찰이 기소권을 행사한다. 하지만 과학적인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소가 어렵다." 김오수 부장의 목표는 `뛰는 범인 위에 나는 첨단과학수사부`가 되는 것이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대검 과학수사부는 첨단범죄 수사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 과학수사는 어느 기관이 독점해선 안 된다. 일부에서 과학수사부 출범을 오해하고 있던데 과학수사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정보기술(IT)을 수사와 접목해 범인을 신속히 검거하고 국민인권 보호차원에서 죄 없는 사람의 혐의는 벗겨 줘야 한다.”

수사 관행에 대해 과거에는 ‘형사는 패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진다’’는 냉소적인 말이 있었다. 소설가 정을병 선생(작고)의 풍자소설 ‘육조지’에도 이 말이 등장한다.

“내가 초임 검사시절에는 피의자를 불러 설득해 범죄를 자백 받았다. 그게 유능한 검사의 척도였다. 지금은 피의자가 묵비권을 행사하고 변호사 조언도 받는다. 과학적인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소가 어렵다. 사건이 발생하면 검찰이 기소권을 행사한다. 대검 과학수사부가 첨단과학수사 종결자가 돼야 한다.”

대검찰청은 2월 16일 과학수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검사장이 지휘하는 과학수사부를 출범했다. 그동안 과학수사기획관과 담당관 3명으로 운영되던 조직은 검사장급 과학수사부장과 기획관 1명, 과장 4명이 있는 과학수사부로 승격됐다. 직제에 없던 사이버범죄수사단을 사이버수사과로 개편해 빈발하는 사이버테러와 해킹, 첨단산업 기술 유출에 적극 대응할 수 있게 했다. 검사 6명과 전문 인력 124명 등 총 130명으로 구성됐다. 대검 내 최대 규모다. 앞으로 과학수사1과는 감정과 감식을, 과학수사2과는 DNA와 법 생화학을, 디지털수사과는 전자증거 수집과 분석을, 사이버수사과는 사이버범죄 수사지원을 각각 담당한다.

-초대 부장으로 취임했는데 과학수사부 운영방침이 궁금하다.

“세계 최고 과학수사가 목표다. 초대 부장으로서 체계적인 과학수사 기반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할 각오다. 사이버범죄와 금융, 경제, 기업, 부패, 강력범죄에는 현장 밀착형 통합 과학수사 서비스를 일선 수사기관에 제공하겠다. 과거 사람에 대한 수사가 지금은 범죄 증거확보로 무게중심이 변했다. 범죄는 검찰이 기소권을 가진 만큼 증거 확보는 검찰의 책임이다.”

-어떤 일부터 할 생각인가.

“분산서비스거부(DDoS) 공격과 농협전산망 마비사건, 한수원 자료유출과 같은 국가 사이버테러형 범죄에 체계적 대응이 시급하다. 미비점을 보완하겠다. 다른 기관과 디지털 포렌식 역량을 공유하겠다. 이미 서울시와 선거관리위원회, 관세청 같은 많은 기관과 사이버범죄, IT 분야 수사와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대응체계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디지털 포렌식 장비는 고가다. 다른 기관이 장비 구입하기가 어렵다. 부처 간 협력으로 정부 3.0을 구현하겠다. 국내외 과학수사 기법 사례집을 매년 발간하고 그동안 논란이 됐던 디지털 통신 분야 수사 관련 법리도 연구하겠다.”

-사이버범죄 유형은.

“사이버테러형 범죄와 일반 사이버범죄로 구분할 수 있다. 컴퓨터시스템이나 정보통신기반에 대한 해킹이나 DDoS 공격은 사이버테러형 범죄다. 전자상거래 사기, 개인정보 침해, 저작권 침해, 사이버명예 훼손은 일반 사이버범죄다.”

-전체 범죄 중 사이버범죄가 차지하는 비중은.

“검찰통계에 따르면 사이버범죄 발생은 연 10만건 이상이다. 이 중 10%가 사이버테러형 범죄다. 2010년 476명을 구속했다. 매년 늘어 지난해 상반기에만 765명을 구속했다. ”

-사이버범죄로 인한 피해액은.

“사이버범죄 유형이 다양해 통계가 정확하지 않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피싱이나 파밍,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액은 2013년 2만6123건이 발생해 피해액이 1365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886억원 피해가 발생했다. 날로 급증하는 추세다.”

-사이버범죄 검거율은.

“40~50% 수준이다. 해외를 경유하는 사례가 많아 검거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사이버범죄 예방과 신고절차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보안이 가장 중요하다. 백신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출처가 확인되지 않는 메시지는 접속하지 않아야 한다. 인터넷사기나 해킹, 바이러스 유포 사건은 즉시 경찰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하고 금융관련 범죄는 금융 감독 통합콜센터로 신고하면 된다.”

-사이버범죄에서 수사관을 사칭하는 사례가 많은데.

“금품 편취가 목적이다. 수사관은 금품이나 개인정보, 보안카드 같은 금용정보를 절대 요구하지 않는다. 이런 정보를 요구하면 즉시 경찰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해야 한다.”

-중국이 해킹공격 진원지로 자주 오르내린다. 중국과 협조는.

“인터넷은 국경이 없다. 국제 공조가 시급하다. 지난해 4월 중국 공안부와 사이버수사 실무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대검 사이버수사과 신설을 계기로 중국 내 사이버범죄를 담당하는 사이버안전보위국과 직접 네트워크구축을 추진하겠다. 양국 간 가교역할을 할 검사나 전문수사관을 주중 한국대사관에 파견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디지털포렌식 표준화는.

“관련 기관과 협의해 최대한 빨리 추진할 계획이다. 디지털 범죄 증거분석이나 유전자 감식에서 표준화해야 정보 공유가 가능하고 대응체계도 일원화할 수 있다.”

-사이버범죄 관련 법이나 제도 정비는.

“디지털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이로 인해 사이버범죄가 지능화 첨단화하고 있지만 법령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수사에 어려움이 있다. 정보 분산보관이나 최첨단 보안프로그램설치, 정보 삭제가 쉬워 증거 확보가 어렵다. 압수대상 정보가 저장된 저장매체와 정보통신망으로 연결된 다른 정보저장매체 압수, 정보 보존요청 제도 같은 정비사항을 검토 중이다.”

-전문 인력은 어떻게 양성하나.

“분야별, 수준별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설할 방침이다. IT 기초와 추적, 분석실무, 심화과정으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업무나 수준에 따라 차등교육을 실시한다. 우수한 외부 전문가도 특채한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해킹전문가를 특채한 적이 있나.

“그런 일이 없다. 해킹은 범죄 행위다. 범죄행위를 한 사람을 어떻게 공직자로 특채하나.”

김 부장의 좌우명은 ‘현실에 충실’이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올지 안 올지 불투명하다. 인간이 내일 일을 어떻게 아나. 오직 지금 선 그 자리,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검찰 내에서 그는 ‘운동권’으로 통한다. 축구와 탁구, 테니스, 등산, 볼링을 비롯한 운동에 만능이다. 지난겨울 울릉도 성인봉에 갔다가 빙판에 미끄러져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그 후 그는 ‘잘한다’가 아니라 ‘즐긴다’로 생각을 바꾸게 됐다고 했다.

‘뛰는 범인 위에 나는 첨단과학수사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하면서 대검 청사를 나섰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소곤소곤 내리고 있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