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불과 수십 년까지만 해도 역겨운 ‘범죄자’로 취급됐다. 최근 영화 ‘이미테이션게임’으로 재조명 받은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닝 역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화학적 거세를 명령받는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소위 문명사회에서 동성을 사랑하는 것은 죄악시 됐다.
최근 인식이 많이 변했지만 동성애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정신적 질병으로 받아들여진다.
소수의 성적 취향을 가진 이들이 편견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많은 동성애자들이 따가운 눈초리를 의식해 자신의 성적 성향을 숨긴 채 살아간다.
동성애에 이해를 가졌다는 사람조차도 이 문제를 거론할 때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는 일이 흔하다.
동성애 행위가 지지 혹은 반대할 행위인가? 혹은 질병이냐, 아니냐? 문제는 사실 오래 전에 방향이 정리됐다.
1970년대부터 이어진 수많은 연구는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간 신체·호르몬·유전적인 차이를 규명하는데 실패했다.
질병이 “치료로 고쳐지거나 개선 될 수 있는 것”을 전제한다면 적어도 동성을 사랑하는 것은 병이 아니라 딸기 케이크를 좋아하는지, 치즈 케이크를 좋아하는지 같은 취향 문제라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2008년 미국 대선 출구 조사에 따르면 4%에 해당하는 유권자들이 동성애자나 양성애자로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밝혔다. 2000년 미국 인구조사국에 의하면, 대략 60만1209가구가 결혼하지 않은 동성 파트너로 이뤄졌다. 이처럼 성 소수자(아래부터는 동성애자가 아닌 성 소수자로 쓰기로 한다)는 사회의 한 부분이다.
최근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이뤄진 성 소수자 처형은 지구촌에 그들을 향한 폭력이 여전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성 소수자를 산채로 고층에서 던져 죽인 IS의 잔학함을 비난하는 동시에 진보를 자처한다는 서울시장의 “(동성애에 대한) 차별은 금지돼야 하지만 동성애는 확실히 지지하지 않는다”는 차별적 발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공간과 강도가 다른 두 사건이지만 소수자를 향한 비난과 분노의 뿌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앨런 튜닝은 약 1년간 강제로 여성호르몬을 투약하는 호르몬 요법을 받다가 자살한다. 그는 독이 든 사과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후에 스티브 잡스는 초기 컴퓨터 콘셉트를 잡는데 큰 기여를 한 앨런 튜닝을 기려 애플 로고를 한 입 베어 문 사과로 형상화 했다고 한다.
호르몬 요법으로 힘들어하는 튜닝에게 오랜 친구 조안 클라크는 “당신이 평범하지 않았기에 세상은 훨씬 좋아졌다”며 위로한다.
남자를 사랑한 그가 범죄자 취급을 받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살 수 있었을까? 적어도 인류의 4%는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았겠지.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