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한의학은 오랜 역사를 통해 여러 질병의 치료와 완화에 효과가 있음을 보여줬다. 동의보감을 비롯한 다양한 한의서도 있다. 하지만 전통 한의학에서 처방되는 한약에는 실제 약효와 상관없는 화합물들도 함께 있어 간독성 등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 약효가 있는 성분들이 실제 인체 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분자생물학적, 생화학적 측면에서 알려지지 않았다.
이상엽 KAIST 특훈교수팀이 전통 한약의 인체 내 작용원리를 처음으로 밝혀냈다. 연구팀은 전통 한약의 약효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한의학에서 발견되는 화합물들과 인체 대사산물들의 구조 유사도에 주목했다. 전통 한의학의 화합물들이 구조가 유사한 대사산물 합성 대사경로에 작용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시스템 기법의 일환으로 지금까지 구조가 규명된 한약재 내의 화합물들과 모든 인체 대사산물들에 대해 구조 유사도 분석을 수행하고 이를 토대로 전통 한약의 화합물들이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상경로들을 예측했다.
또 많은 질병들은 인체 내 분자들 간의 비정상적인 반응으로 일어나며 효과적으로 치유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분자들을 억제하는 ‘다중표적(multi targeting)’이 중요하다. 전통 한약의 화합물이 얼마나 다중표적에 유리한지 알아보기 위해 서양의학을 기반으로 개발된 약물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구조 유사도 분석을 시행했다.
그 결과 전통 한약의 화합물들이 허가된 약물들에 비해 인체 대사산물들과 더욱 높은 구조 유사도를 보였다. 이는 허가약물들과 비교해 한약재의 구성 화합물들이 인체 내의 다양한 대사반응들에 강한 약효를 보일 수 있음을 뜻한다. 결과적으로 이번 연구의 구조 유사도 분석은 전통 한약 내의 약물들이 허가약물들보다 다중표적에 더 유리함을 보여준다.
전통 한의학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다수의 화합물들이 ‘상승효과(synergistic effect)’를 통해 약효를 발휘한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2000년을 시점으로 전통 한의학의 약효 원리가 명확히 밝혀진 화합물 조합들을 분석했다. 그 결과 문헌에 보고된 상승효과를 갖는 화합물 조합들은 대부분 주요 약효를 전달하는 화합물과 이를 보조하는 화합물로 구성돼 있었다.
흥미롭게도 이런 화합물 조합의 구성은 한의학의 처방 원리인 ‘군신좌사(君臣佐使)’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 군신좌사에서 임금에 비유되는 ‘군’은 가장 주된 약효를 제공하는 약이며, ‘군’의 약효는 신하에 비유되는 ‘신좌사’에 의해 극대화된다. ‘신’은 군약의 효력을 보조 및 강화하고, ‘좌’는 군약의 독성 완화 및 수반 증상의 해소를 목적으로 한다. ‘사’는 처방의 작용 부위를 질병 부위로 인도하고, 여러 한약을 중화하는 데에 사용된다.
약효원리가 밝혀진 상승효과를 띄는 화합물 조합들은 ‘군-신’ ‘군-좌’ ‘군-사’에 모두 해당하는 구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상승효과를 갖는 화합물 조합들에 구조 유사도 분석을 적용한 결과, 이들이 아미노산과 비타민 관련 대사경로에 주로 작용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번 연구에서 제안한 시스템 기법을 통해 아직 알려져 있지 않은 전통 한의학 화합물들의 작용 메커니즘을 밝힐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연구팀은 화합물들의 작용 메커니즘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 향후 구조 유사도 분석에 더해 인체 가상모델과 화학정보학 등의 분석기법을 도입할 예정이다.
연구팀은 “궁극적으로 이러한 노력은 전통 한의학을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서양의학과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며 “전통 한약에서 발견되는 화합물을 통해 현대 주요 질병의 치료를 꼭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