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젊은 그들' 제 11회

사진 : 김유림 기자
사진 : 김유림 기자

“내가 저걸 박살낸다.”

덕길은 되도않게 뻔뻔했다. 빵빵한 똥베짱은 덕길을 따르는 젊은 청년들에게 얼추 먹히긴 했다. 유독 흥칠이는 입을 반쯤 벌리고 감탄했다.



“대장이라고 부를까?”

흥칠이가 불쑥 끼부렸다.

“우리끼리는 대장도 부하도 없다.”

덕길이도 불쑥 끼부렸다.

“평생을 주인을 모시고 살아서 그런지 대장이 없으니...세상이 아귀가 안맞는 그런 느낌이란 말이야.”

덕길이가 흥칠이의 팔을 잡아 거칠게 흔들었다.

“깨어나란 말이다. 제발. 이제 주인도 없고 노비도 없다. 너는 노비가 아니다. 부하도 아니다. 흥칠아. 너는 누구냐?”

흥칠이는 꽤 머뭇거렸다. 생애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매우 어려운 질문이기도 했다. 한참 뜸을 들였다.

“난...청년이지. 청년. 암.”

덕길은 흐뭇하게 웃으며 흥칠이의 팔을 아프도록 잡았다.

덕길은 주차사령부 건물을 보았다. 올려있는 지붕 기와가 단촐했고 그 위로 태양이 벌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덕길은 분노만큼이나 뒤틀리고 있는 태양을 보며 주먹을 불끈 해보았다. 문 앞에는 쌍판데기가 원숭이처럼 생겨먹은 일본놈 두 놈이 소총을 어깨에 메고 건들건들 하고 있었다. 덕길과 흥칠이는 두 놈을 찢어죽일 듯이 쳐다보았다.

“정면으로 치면 내가 죽고 우리가 죽는다.”

뒤로 젊은 청년들이 슬쩍 다가왔다. 나이 많은 칠성이는 깝쳤다.

“사단 병력이야. 도저히 안된다.”

덕길은 울화통이 터졌다.

“그런 마음 꼬라지라 지금까지 노비로 살았나보네. 네 할베도 노비였고 네 에비에미도 노비였고 네도 노비였고 네 자식새끼도 노비로 살 것이 분명한데, 저놈들이 사단이 무슨 상관인데? 양반이 사단 병력이라 노비로 살았어?”

그러자 이번엔 제일 어린 동식이 꼬장을 부렸다.

“그럼 우리가 왜 일본놈들과 싸웁니까? 양반들과 싸우는게 맞지않습니까? 우리의 적은 양반입니다.”

덕길은 입에 개거품을 물었다.

“우리가 양반들을 부셔도 그런 양반들은 계속 태어날거다.”

흥칠이도 만만치 않았다.

“바로 내가 하고싶었던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왜 일본놈들과 싸워야하는지 대장같은 덕길이가 말해봐라,”

“대갈통을 왜 달고다녀?”

덕길의 눈알이 번들했다. 흠칫 짐승같았다. 흥칠이는 꿈벅꿈벅 소눈깔을 들이밀었다.

“양반들도 지금 일본놈들한테 핍박받고 있다. 그럼 양반들이 싸워야지 왜 우리가 싸우냐 이말이지. 막말로 우리가 총알받이 아니야? 난 싫다.”

덕길이가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입술에 터지며 입안에서 핏덩이가 툭 튀어나왔다. 흥칠이 순간 피침을 뱉으며 욕질부터 헸다.

“에이. 시부럴, 네가 양반이야? 양반만 날 때릴 수 있다.”

덕길이는 흥칠이의 면상을 퍽 갈겼다. 흥칠이는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등신새끼. 너는 양반보다 못한 새끼다.”

흥칠이가 벌떡 일어나 씩씩거렸다.

“뭐라? 이새끼가 뒈질려고 환장했나? 그래 오늘 뒈지자.”

흥칠이 무작정 덤벼들었다. 칠성이가 뜯어말렸다.

“아무도 우리를 못때린다.”

덕길의 일갈에 순간 조용해졌다.

“이 등신천치들아. 우리는 양반들을 위해 싸우는게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찾으려고 싸우는거다.”

“자유를 찾으려고 일본놈들과 싸웁니까? 양반은 뭐합니까?”

동식이는 아직도 캥기는게 많았다.

“양반을 이겨도 일본놈은 남는다. 일본놈들이 새로운 주인이 되려 할 것이다. 우리는 끝내 일본을 이겨야 진짜 자유를 찾는다.”

“그리 안되면?”

흥칠이가 입술을 바짝 깨물었다.

“내가 책임진다. 진짜다.”

동식이가 또 까불거렸다. 어디서 주워들은 나부랭이들이 많았다.

“저 위에선 빨갱이들이 설친답니다.”

“그건 나중 문제다. 나는 복잡한거 모른다. 하나씩 쳐부수자. 우리의 자유를 찾으면 된다. 단 하루를 살아도 자유롭게 살다가 죽고싶다. 그게 인간 덕길이의 소원이고 모든 노비의 소원일거다. 자아, 청년들아.”

동식이 굵은 눈물을 뚝 떨궜다.

“아이 시벌, 창피하네. 와 눈물이 떨어지네? 아이 시벌. 청년들, 청년들...”

덕길은 동식을 품어주었다.

“동식아, 우리는 시대를 바꿀거다.”

모두 덕길을 보았다. 그들의 목숨을 건 기대였다.

“우리가 곧 사단이다. 움직이는 사단.”

동식은 멍한 얼굴이었다. 잠시 후 모두 껄껄 웃어제꼈다.

“꼴랑 몇 명으로 사단, 하하. 웃긴다. 근데 멋지다. 우하. 청년답게 살다가 청년답게 죽겠네. 더럽다. 참.”

흥칠이 입에 피칠갑을 하고 웃었다.

“폭탄부터 만들어야겠다.”

덕길의 선언에 서로 긴장한 채 얼굴을 쳐다보았다.

성준은 애꿏은 병풍만 보고있었다. 김시원은 자꾸 헛기침을 했다. 성준 옆에 은숙이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말도 한 마디 못하고 몇 시간 째 이러고 있었다.

“곧 부부가 될터인데 서로 풀어라.”

김시원의 간곡함에도 성준은 좀체 시선을 주지 않았다. 은숙은 아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오늘은 푹 쉬고...내일 혼례 치룰테니 가서 쉬어라.”

성준은 차마 대들지 못했다. 은숙 때문이었다. 아무 죄없는 은숙 앞에 대놓고 혼인이 싫다고 말 못했다. 은숙이 소리없이 일어났다. 김시원에게 큰 절을 올리고 방을 나갔다.

“전 못합니다. 이건 감옥살이입니다.”

성준은 참았던 소리부터 뱉었다.

“여자가 대수냐? 이 여자 싫으면 저 여자다 얻으면 되고 저 여자 싫으면 그 여자 얻으면 될 것을. 사내 자식이 불알달고 뭐하는 짓이냐?”

김시원은 성준에게 댓거리 조차 아까웠다.

“저 여자는 뭡니까? 내가 눈길도 안줄 여자인데 무슨 불행입니까?”

“말마라. 내일이다.”

김시원은 한숨을 푹 쉬었다.

“미옥이 후실로 들여라. 됐나?”

성준은 사실 솔깃하기도 했다. 허락되지 않을 사람이라면 이렇게 해서라도 갖고싶었다. 성준은 일어났다.

“내일 뵙겠습니다.”

성준은 미옥에게 갔다. 미옥과 오늘 첫날밤을 치룰 생각이었다. 그게 미옥이을 위한 그의 진짜 배려였다. 진짜 사랑이었다.

소설가 하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