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연구원에서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로, 이어 중앙부처 정책자문관과 지자체·통신기업 최고정보책임자(CIO)를 거친 후 여성 인력 양성에 힘쓰는 사람.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성공한 여성 중 하나로 꼽히는 그가 셰릴 샌드버그의 ‘린인(Lean In)’을 들어보이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송정희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장은 삼성종합기술원·삼성전자를 거쳐 벤처기업 텔리젠 대표를 역임한 뒤 옛 정보통신부 IT정책자문관으로 활동했다. 이어 서울시와 KT에서 CIO로 근무했다. 중간에 대학 강단에도 섰고, 지금은 여성 연구개발(R&D) 인력 양성을 지원하는 기관장으로 있다. ‘IT’ ‘이공계’라는 키워드 아래에서 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조직과 위치에서 일해 본 소중한 경험을 지녔다.
송 회장이 ‘린인’을 만난 것은 지난 2013년 미국에서다. KT 부사장으로 근무할 당시 업무 협의차 방문한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책을 선물로 받았다. 린인은 페이스북의 2인자로 세계 여성의 롤 모델로 자리잡은 샌드버그가 ‘여성’ ‘일’ ‘리더십’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간 책이다.
귀국 후 읽어본 책은 저자의 유명세만큼 괜찮았다. 송 회장은 억지로 포장하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낸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바닐라 맛처럼 플레인(plain)한 책’이다.
“역경을 딛고 성공 스토리를 써가는 식으로 포장하는 일반적인 책과 달리 과장하지 않고, 영웅담도 만들지 않는 것이 좋았습니다.”
송 회장이 바라본 샌드버그는 다른 유명 여성 인사와 차별화되는 점을 몇 가지 갖고 있었다. CEO가 아님에도 CEO 못지않게 자신의 커리어를 탄탄히 관리하며 명성과 부를 얻었다. 자신이 실패했던 것, 남의 도움을 받아 이룬 부분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능력과 성공만을 강조하는 보통의 여성 인사와 달리 ‘젠더(性)’ 이슈에 관심을 갖고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이 성공하면 숨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샌드버그는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적극 활동하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송 부회장은 ‘린인’을 사회 초년생보다는 10년가량 경험을 지닌 여성에게 추천했다.
여성공학기술인협회장으로서 샌드버그처럼 유능한 여성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그의 고민거리다. ‘경단녀(경력단절여성)’ 문제를 해소하고, 여성의 이공계 유입을 늘리는 것이 성공한 여성인 그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무다.
송 회장은 무엇보다 CEO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정책이 기업에 (여성 인재를 꺼리는) 핑계거리를 없애주면 그 다음은 CEO가 바꿔나가야 합니다.”
후배 여성에게는 자신감 회복을 주문했다. “기업에서 일하는 여성 중 상당수는 입사시험 성적은 좋지만 업무 능력은 모자란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신중하기보다 자신감을 갖고 빨리,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게 중요합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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