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서부텍사스중질유(WTI)가 중동산 두바이유와 영국산 브렌트유에 비해 낮은 가격에 거래되면서 미국 내 원유 수출 개방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 의회와 자원개발(E&P) 업체들이 현재 저유가 상황에서 산업 구조조정을 방지하고 국가 경제부흥을 위해 지속적으로 원유수출을 주장하고 나섰다.
원유 수입국 다각화를 적극 추진하는 우리나라 SK에너지·GS칼텍스·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는 ‘기대 반 우려 반’ 시선을 던지고 있다. 대주주 사우디아람코로부터 안정적으로 원유를 공급받고 있는 에쓰오일 역시 시장 변화를 주시하긴 마찬가지다.
정유업계는 미국이든 멕시코든 가격경쟁력 있는 원유 도입을 얼마든지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미국과 멕시코 등에서 시범적으로 원유를 도입하는 등 수입 다변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GS칼텍스는 향후 미국산 원유 수출 제한이 풀리면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지난해 미국산 콘덴세이트(초경질원유)를 도입한 SK이노베이션 역시 북미산 원유를 도입해야 할 상황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원유 거래 전문 자회사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지난해 미국에서 자원개발 사업을 위해 인수한 현지기업을 중심으로 시장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올 상반기 멕시코로부터 400만배럴의 원유를 들여오는 현대오일뱅크도 값싼 원유를 들여올 수 있는 길을 계속 찾을 계획이다. 미국산 원유 수입길이 열린다면 얼마든지 경제성을 검토해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유사는 이처럼 미국산 원유 도입에 긍정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도 원유 도입선을 중동에서 미국으로 대체하겠다는 생각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조금이라도 싼 원유를 들여오는 것이 경영 측면에서 도움이 되기 때문에 도입처를 늘리는 것 정도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북미산 원유 수출이 개방되더라도 중동산보다 가격이 싸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WTI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는 수출이 묶여 있어 미국 내에 원유 과잉 공급상태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수출 제한이 풀려 WTI가 시장에 유입되면 다른 유종과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하거나 경질유라는 특성상 두바이유 보다는 오히려 더 비쌀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우리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정유사는 미국산 원유 수입이 가능해지더라도 오랜 기간 유지했던 도입처를 당장 바꾸는 것이 아니라 미국산 유입에 따른 원유가격 인하를 기대한다”며 “당장은 북미 대륙에서 싸게 나오는 스폿 물량이 원유 도입 경제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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