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양재, 말죽거리에서 첨단 R&D 중심으로 거듭난다

서울지하철 3호선 양재역 대합실. 말에게 여물을 먹이는 모자이크 벽화가 있다. 오래전 ‘말에게 죽을 먹이는 곳’이라 해서 ‘말죽거리’라 불렸던 양재의 유래다. 수도 서울과 삼남(경상·충청·호남)을 잇는 관문 ‘양재’가 21세기 세계적 규모 첨단 연구개발(R&D) 클러스터로 거듭난다.

양재 R&D 지구 주변 입지
양재 R&D 지구 주변 입지

서울시는 이달부터 내년 2월까지 ‘양재·우면 R&D 지구 육성 종합계획 수립’에 나선다. 용역비 2억원을 올해 예산에 반영해 서초구 양재·우면동 일대 150만㎡를 오는 2030년까지 R&D 지구로 육성하는 방안을 연구한다.

시가 양재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민간 주도의 자생적 R&D 생태계, 시가지 변화에 의한 개발 움직임 등이다. 양재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시 외곽으로서 꽃시장, 화물트럭터미널 등 유통·물류가 중심을 이루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택지개발, LG와 KT 등 기업들의 R&D 시설 조성과 함께 물류 중심에서 첨단 R&D로 경제 중심이 옮겨갔다.

이에 2000년대 후반부터 지역에서 ‘R&D 지구’ 육성 요구가 부각됐고 서울시는 2010년 이 지역을 ‘특정개발진흥지구’로 지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올해 신년사에서 양재를 ‘서울형 창조경제의 거점’으로 지목하며 서울의 새로운 산업 중심지로 본격 육성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특정개발진흥지구로 지정되면 서울시로부터 △지구단위계획 지정으로 용적률 완화 △지방세 감면 △중소기업 육성자금 융자 △기업지원시설의 설치 지원 등의 혜택을 받는다.

우선 용적률은 120%를 더 적용받아 쾌적한 업무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재산세와 취득세를 5년간 50% 감면해 기업의 부담도 덜어준다. 또 100억원 이내에서 건축비의 75%, 8억원 이내에서 입주자금의 75% 등을 지원받아 기업 입지에 필요한 초기 부담을 덜어준다.

서초구 움직임도 활발하다. 구 자체적으로도 별도 용역을 진행해 보다 알맞은 방안을 찾을 계획이다. 서초구 일자리경제과 관계자는 “최적의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구 차원에서도 연구를 하고 있다”며 “용역 결과에 따라 R&D 지구의 밑그림이 그려질 것”이라 말했다.

양재 R&D 클러스터 주요 축은 삼성전자, LG전자, 현대·기아자동차, KT 등 대기업이다. 1987년 당시 금성사(현 LG전자)가 중앙연구소를 연 것이 시초로 1992년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가 연구사업단을 설치하는 등 여러 분야 연구시설이 모여들었다. 서울 도심과 비교해 지대가 저렴하고 경부고속도로 등 교통이 편리한 점이 손꼽혔다.

지역에서는 이 점에 착안해 오래전부터 양재를 R&D 메카로 키우자는 주장이 줄곧 제기됐다.

2008년 서초구 기획경영국이 내놓은 가칭 ‘양재R&D 밸리’ 조성을 기반으로 한 서초구 지역경제 활성화’ 문건에 따르면 서초구는 양재의 이점으로 △LG전자, 현대·기아차 등 대기업 R&D 센터 입주 △2007년 기준 서울시 전체 기업연구소 3477개 중 5.77%가 입지한 집적화 △지역 기업 및 대학과의 연계 등을 꼽았다.

우선 입지 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재 서초구에는 삼성, LG, 현대·기아차 등 국내 주요 기업 상당수가 입지해 있다.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는 삼성동 이전 후 그룹 R&D센터로 활용될 예정이고 LG전자는 이곳에만 강남·서초·우면의 3개 R&D시설을 갖고 있다. 올해 하반기 삼성전자 우면R&D센터가 입주하면 서초·수원 등으로 분산돼 있던 R&D 인력 1만여명이 근무하게 돼 명실상부한 R&D 거점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룹의 심장인 서초동 삼성타운과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인근 지역과 시너지를 내는 ‘범강남 R&D 벨트’도 기대된다. 서울시가 지난해 4월 발표한 ‘경제비전 2030’에 따르면 양재 R&D 지구와 양재대로로 이어진 강남구 개포동 지역은 ‘모바일 융·복합 클러스터’로 육성된다. ‘TP(테헤란·포이)밸리 고도화’ 등 삼성동·잠실을 글로벌 비즈니스 중심지로 키우려는 계획도 마련돼 있다.

장기적으로는 경기 남부권을 ‘R&D 중심 혁신 클러스터’로 육성하려는 경기도 계획과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한다. 과천·광교·안산·안양·판교 등과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만 아니라 대학, 연구소 등 인적자원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경제정책과 관계자는 “양재 R&D 지구는 서울시에서도 관심을 갖고 구상하고 있는 곳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지역”이라면서 “입지 등 주변 여건과 연계해 구체적 방안을 찾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