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4일, 저녁 하늘에 붉은 달이 떠오른다. 부분일식 상태에서 떠오른 달은 조금씩 붉게 변해가다 오후 8시 54분 개기월식 상태가 되면서 완전히 어둡고 붉은 달이 된다.
이번 월식이 지나가면 2018년에나 다시 우리나라에서 개기월식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4일 밤을 기다린다. 전국 곳곳에서 월식 관측행사와 강연 등 이벤트도 열린다.
하지만 불과 수백 년 전만 해도 월식이나 일식은 국가에 불길한 일이 일어날 징조라고 여겨졌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식·월식 같은 이상 천문현상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번 월식 놓치면 3년 뒤에나
한국천문연구원(원장 한인우)은 오는 4월 4일 지구 그림자가 달을 가리는 개기월식 천문현상이 일어난다고 예보했다. 4일 오후 7시 15분 달 일부분이 가려지는 부분월식이 시작되며 개기월식이 일어나는 모든 과정을 관측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개기월식은 지난해 10월 8일 이후 6개월 만이다. 하지만 자주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월식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관측할 수 있는 월식은 2011년 일어났고, 이번 이후에는 2018년 1월에나 개기월식을 볼 수 있다. 오는 9월 월식이 다시 발생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고 북아메리카와 유럽 등에서만 관측할 수 있다.
4일 오후 6시, 달이 지구 반그림자에 들어가 평소보다 어둡게 보이는 반영식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때는 아직 우리나라에 달이 뜨기 전이어서 관측이 불가능하다. 이날 저녁달이 뜨는 시각은 오후 6시 48분이며 오후 7시 15분 달이 지구 본그림자에 들어가 일부가 가려지는 부분월식부터 관측할 수 있다. 달이 지구 그림자에 완전히 들어가는 개기월식은 오후 8시 54분 시작해 오후 9시 6분까지 12분간 진행된다. 그 이후 오후 10시 45분까지 부분월식이 진행되며 5일 오전 0시 01분 반영식이 종료되면 월식 전 과정이 끝난다. 개기월식이 진행 중인 오후 8시 54분에서 오후 9시 6분까지는 지구 대기를 통과한 태양 빛 때문에 평소보다 어둡고 붉은 달을 볼 수 있다.
천문연구원은 개기월식을 국민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국립과천과학관,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전국천문우주과학관협회 등이 진행하는 관측회를 안내하고 지원한다. 전국 시민 관측 장소는 한국천문연구원 홈페이지(kasi.re.kr), 페이스북, 트위터(twitter.com/kasi_news)에서 25일부터 안내할 예정이다. 천문연구원은 월식이 진행되는 각 과정을 시간대별로 업데이트한다.
◇월식의 과학
월식은 태양-지구-달 순서로 배열됐을 때 달이 지구 그림자에 들어오는 현상을 말한다. 보름달일 때 월식이 일어나지만 달 궤도면인 백도면과 지구 궤도면인 황도면이 약 5도 기울어 있어 모든 보름달에 월식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지구 본그림자에 달의 일부가 들어갈 때를 부분월식, 전부가 들어갈 때를 개기월식이라고 한다.
사서에 따르면 공식 기록으로는 721년 3월 19일 바빌로니아 천문학자가 남긴 개기월식이 최초다. 공식 기록은 아니지만 이전에도 월식이 일어났음을 추측할 수 있는 기록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다양한 역사서에 월식과 관련한 많은 기록이 나온다. 고려사 북역 제5권 18면 ‘1016년 5월 24일(음력 1016년 4월 16일) 개기월식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2집 696면 ‘1425년 11월 26일(음력 1425년 10월 17일) 개기월식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월식의 원인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기 이전까지 사람들은 이를 두려워했다. 고대인이 월식을 두려워한 것은 달이 사라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기월식 때 달이 평소와 달리 붉게 보여서다.
옛날에는 붉은 달을 불길함과 재앙의 징조로 인식했다. 서양에서도 월식 때 뜨는 붉은 달을 ‘블러드 문(blood moon)’이라고 부르며 피(blood)에 빗대어 표현했다. 그리스 신화에도 여신 헤카테가 붉은 달이 뜨는 날 저승의 개를 끌고 나타나 저주의 마법을 펼친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개기월식이 일어날 때 달이 붉게 보이는 것은 불길함과는 아무 관계없는 빛의 산란 때문이다. 지구 대기를 지난 빛이 굴절돼 달에 도달하는데 이 과정에서 산란이 일어나 붉은 빛이 달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지구 대기 상태에 따라 붉은색은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과학자들은 월식의 붉은 빛으로 지구 대기 상태를 확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구에서 개기월식이 일어날 때 달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달에서 볼 때는 달-지구-태양 순으로 일직선이 되기 때문에 지구 뒤로 태양이 지나가는 일식 현상을 볼 수 있다. 달에서는 지구가 태양보다 크게 보이기 때문에 태양이 지구 뒤를 지나가는 모습이 관측될 것으로 보인다. 커다란 지구 뒤로 작은 태양이 지나가기 때문에 지구에서 보는 일식보다 진행시간이 더 길다.
월식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역할도 했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월식을 관측하다 달에 드리운 그림자가 지구의 그림자며, 이로써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았다고 알려진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