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Her)’에서처럼 언젠가는 로봇이 인간과 복잡한 감성을 교감할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이미 인공지능(AI)을 갖춘 로봇은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됐다. 인공지능은 말 그대로 사람이 조종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해하고 학습하며 상황을 판단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블레이드러너의 리플리컨트나 프로메테우스의 데이빗, 에일리언2에 나오는 비숍 등은 인간과 차이가 전혀 없는 고차원적 인조인간이다. 하지만 현재의 과학수준과 아직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보다 좀 더 그럴 듯한 현실감을 주는 영화가 1999년 개봉한 바이센테니얼맨이다. 단순히 가사를 돕던 로봇 앤드류가 인간적 지능과 감정을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앤드류는 엔지니어의 실수로 로봇 회로에 변화가 생기며 지능과 호기심을 갖게 된다.
반면 채근 개봉한 영화 ‘채피(Chappie)’는 실수가 아니라 처음부터 스스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로봇으로 탄생한다. 마치 인간이 아기 때부터 학습하며 성장하는 것처럼 AI를 갖춘 채피 역시 주변 환경을 스스로 인지하고 생각하면서 진화한다.
채피는 단순한 판단을 뛰어넘어 ‘감성’을 갖춘 로봇이다.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에서 고민하고 기뻐하며 상처받는다. 닐 블롬캠프 감독은 채피를 ‘가장 완벽한 감성 로봇’으로 그려내는 데 중점을 뒀다.
채피처럼 로봇이 감정을 갖추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는 AI는 이미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소프트뱅크의 가정용 휴머노이드 ‘페퍼’가 대표적이다. 페퍼는 사람의 감정을 인식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학습한다.
카메라, 마이크, 다양한 센서로 사람의 표정과 음성, 동작을 인식해 감정을 파악한다. 파악한 데이터는 클라우드에 축적되면서 감정을 읽는 능력이 점차 증가한다. 데이터가 쌓일수록 더 많은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 지난달 개발자 버전이 발매 1분 만에 매진되는 등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 AI는 IBM이 개발한 슈퍼컴 왓슨에서 볼 수 있다. 왓슨은 형태가 불규칙한 인간의 자연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AI 컴퓨터다. 단순한 단답형 질문과 답이 아닌 고도의 사고로 가능한 답을 할 수 있다. 2011년 제퍼디 퀴즈쇼에서 우승한 것은 순식간에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대답을 판단하는 AI 덕분이었다.
영화 속 채피는 범죄가 판치는 현실을 꼬집으며 로봇이 인간보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언젠가는 인간에게 상처를 입고 언덕 위에서 도심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 로봇을 볼 날이 올지도 모른다.
물론 AI 기술은 아직 초보 수준이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한 호기심거리가 아니라 인간의 역할을 대신해 삶의 편의를 높여줄 기술로 기대를 받는다. 전문가들은 패턴을 쌓고 이를 인식하는 알고리즘을 갖추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능을 충분히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여기엔 클라우드 컴퓨팅과 빅데이터 분석 같은 IT 기술이 필수적이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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