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기술은 이미 밀린 게임강국

[기자수첩]기술은 이미 밀린 게임강국

“여러분 L4스위치라는 것을 아십니까? 네트워크 장비 중 하나인데 이미 중국은 그것을 안 씁니다. 그래서 국내 회사들이 만든 게임을 중국에 가지고 가려면 거기에 맞춰 다시 조정해야 합니다.”

지난달 방준혁 넷마블게임즈 의장이 엔씨소프트와 협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느닷없이 통신장비 이야기를 꺼냈다. 한 기자가 “(넷마블게임즈 대주주인) 텐센트로부터 엔씨소프트 기술 탈취 우려가 없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L4스위치는 데이터 종류를 판독해 서버에 부하를 주지 않도록 조절하는 장비다. 이 장비를 쓰지 않는다는 것은 소프트웨어로 이 기능을 구현해 다른 장비에 통합했다는 의미다.

방 의장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분명했다. 온라인게임이나 모바일게임을 구현하는 기술 경쟁력에서 중국이 우리보다 낫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두고 온라인 강국이라 하지만 네트워크 인프라가 촘촘히 깔린 것, 운영 노하우가 좀 있는 것을 빼면 다른 선진국에 비해 기술적으로 나은 점이 없다.

게임은 좀 다르다. 콘텐츠 경쟁력은 기술력만으로 따라잡을 수 없다. 감성과 문화적 배경 등이 풍부해야 비로소 상품 수준이 높아진다.

우리나라 게임업체는 오래전부터 네트워킹 기능을 기반으로 이용자가 놀 수 있는 가상세계를 만들어냈고, 게이머는 그 바탕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한 대학교수는 이를 두고 “20여년 쌓아온 기술과 문화가 콘텐츠 경쟁력을 꽃 피울 수 있는 든든한 토대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준비된 게임강국’ 한국이 꽃을 피울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규제와 진흥을 동시에 외친다. 국회는 호시탐탐 게임을 공격해 이슈를 만들어내려 한다. 국내 게임업계는 중견기업이 생존하기도 버거운 현실이다. 그 와중에 중국은 기술적으로 우리를 추월했다.

돌파구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창조의 샘물이 마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게임을 백안시하는 문화부터 바꾸는 것이 첫걸음이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