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로 하나 되는 EU…속내는 “우리끼리만 뭉칠 거야”

유럽연합(EU)이 역내 국가간 ‘디지털 FTA’를 추진한다. 유럽 국가간 상이한 IT 관련법규를 통일, 법률적 호환성을 제고한다는 방침이다.

EU집행위원회가 유럽연합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동통신 및 미디어법 방향 검토에 들어갔다고 2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안드루스 안십 EU 디지털 부문 총책임자는 “기존 업체들과 IT기업간 관계는 몹시 불균형하고 우리는 이 균형을 바로잡길 바란다”며 “새로운 도전자들에게서 힘의 균형을 되찾아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광대역 네트워크에 대한 자금 조달이 최우선”이라고 덧붙였다.

유럽 통신망 사업자들은 즉각 환영하고 나섰다. 지금까지 이들 기업은 온라인 메시징 서비스 ‘왓츠앱(WhatsApp)이나 온라인 통화 서비스 스카이프(Skype) 등 IT기업들에 대한 불만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통신망 사업자들은 네트워크 접속량이 급증하면서 인터넷 접속 환경이 악화됐다고 설명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지만 EU의 경쟁법 때문에 업계 간 인수합병(M&A)이 제한돼 자본 확충에 어려움을 겪었다.

기존 이동통신 서비스 업체들은 네트워크 망 구축에 대한 투자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도매 요금을 높이는 식으로 이들을 도왔다. 반면 IT기업들은 통신망을 통해 OTT(Over The Top) 서비스를 제공함에도 이에 대한 비용을 충분히 내지 않았다. 이에 통신업계는 페이스북을 이동통신 서비스 업체 범주에 넣어 규제해야한다고 지속해서 주장해왔다.

스티븐 타스 유럽통신네트워크운영사협회(ETNO) 회장은 “이번 결정으로 인터넷 인프라를 개혁하면 앞으로의 업계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U실행위원회는 또 구글 등 인터넷 플랫폼 업체가 저작권이 있는 콘텐츠를 사용할 때 이들로부터 새로 세금을 걷는 방안도 계획 중이다. 안드루스 안십 총책임자는 “사람들이 디지털 저작권에 대한 정당한 보수를 받게 하는 것도 ‘디지털 유럽’의 주된 목표”라며 “과세는 근본 해결책은 아니나 일종의 선택지”라고 설명했다.

이는 EU 지역의 디지털 시장을 단일화해 미래 IT시대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디지털 유럽(Digital Europe)’의 일환이다. 디지털 유럽은 올해부터 오는 2020년까지 EU 소속 28개국의 디지털 시장을 하나로 묶는 게 골자다. 이동통신 및 미디어, 전자상거래, 저작권법 등 소속국들의 디지털 법체계도 이번 검토 작업을 통해 만든 제안서를 기반으로 오는 5월부터 통합을 시작해 연내 마무리할 계획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EU가 애플·구글 등 외국계 IT기업들이 자체 플랫폼으로 하드웨어까지 선점, 미래 IT시대를 만들기 전에 제조업 기반인 자신들의 시장에 온라인을 접목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처럼 정책 방향이 자국 기업들에게만 유리하게 전개되면서 디지털 유럽이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 EU는 이날 필립스·보쉬·오렌지·알카텔·노키아 등 EU 지역 업체들을 중심으로만 사물인터넷(IoT) 얼라이언스를 만들고 이를 주축으로 IoT 생태계를 조성할 것이라 발표하기도 했다.

건더 오팅거 EU집행위원회 디지털경제 부문 위원은 “항공우주기술분야에서 그랬듯 자체 소프트웨어 역량을 키워 미래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쥐어야한다”며 “EU가 미리 행동하지 않으면 미국·한국 등 타국에서 건너온 새로운 도전들에 직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페이스북·구글 등 외국계 IT기업들은 EU에서 지속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 구글은 반독점법 논란에 시달리고 있고 페이스북은 데이터 프라이버시 정책을 두고서 EU사법재판소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김주연기자 pilla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