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만 해도 핀테크라는 말이 이렇게 유행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지금도 거의 매일 언론에서 핀테크가 다뤄지고 있지만 핀테크가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시원하게 얘기하는 사람도 없다. 가끔은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핀테크의 범위가 넓어서 딱히 어디서 어디까지라고 말하기 어렵다고들 얘기한다. 핀테크는 그저 새로운 추세를 말할 뿐이다. 그래서 한 달 전쯤에 본 칼럼에서 핀테크라는 말보다는 테크핀이 맞다고 쓴 적이 있다. 핀테크를 금융에 정보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금융상품으로 인식하게 되면 기존의 금융에 얽혀 있던 각종 인허가와 규제의 덫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정보기술에 금융을 접목하면 규제 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규제를 넘어서는 한 차원 높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핀테크와 테크핀은 가출과 출가의 차이라고나 할까?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관점과 방향은 매우 중요하다. 시작점에서 1%만 차이가 나도 시간이 가면서 그 차이가 점점 더 커지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업적을 남긴 경영자들은 처음 시작부터가 남달랐다. 남들이 그저 당연하게 여기던, 어쩔 수 없다고 여기던,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것을 그들은 가능하다고 봤고, 시작했고, 노력해서 성공시켰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굳이 생각하고, 굳이 시도하고, 굳이 자기가 직접 해 보려고 하지 않는 일을 찾아서 스스로 해냈다. 그러나 큰 업적을 남긴 리더들은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강한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항상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힘이 있다.
지금 핀테크에 대해 말은 많지만 막상 이렇다 할 전문가나 기업이나 솔루션이 보이지 않는 것은 핀테크를 하고 있는 우리들 스스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핀테크를 기존의 대형 금융기관이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 차원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정말 핀테크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의 진화가 아닌 단절이나 변종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핀테크에 대해 각 금융기관들이 동상이몽을 하고 있다. 당국, 은행, 증권, 카드, 대부업체까지 서로 아전인수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문제점을 얘기하다 보니 실제로 말만 많지 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핀테크의 출발점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그 핀테크의 추진동력이 IT전문가가 아닌 윗분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윗분들이 시류를 따라 주창한 사업은 성공하기 어렵다. 윗분들이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계실건가? 뒤에 오신 분들이 앞에 계신 분들의 중점 추진사항을 승계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윗분들이 핀테크를 얼마나 알고 있고 얼마나 시간을 쓸 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이분들이 새로운 관점으로, 전혀 다른 방향에서 핀테크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오히려 윗분들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면 그 방향은 아마 매우 상식적인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상식적이고 리스크 적은 방향으로는 우리가 새로운 핀테크를 키워서 금융기관의 생존전략이나 글로벌 솔루션화하기는 어렵다.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전혀 다른 방향에서 시작해야 하는 사업을 기존 사업의 연장선상에서, 기존 사업의 보완선상에서 시작하려 하기 때문이다. 마치 꿈속에서 가위 눌린 듯 소리는 치는데 소리가 안 나는 것이다.
금융기관의 담당 실무자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솔루션을 찾으려고 열심히 뛰어 다니고 있다. 핀테크 관련 세미나마다 문전성시다. 핀테크 세미나에 나오는 강사 분들도 매번 같은 사람들이다. 성공사례 발표도 몇몇 외국 스타트업에 집중돼 있다. 윗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뭔가는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있는 데 뭘 해야 될지 답답해하고 있다. 실무자들이 혹시 경쟁사가 자기들 안 하는 뭔가를 한다고 치고 나올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불려가서 혼나기 때문이다.
핀테크는 윗분들이 나서서 해야 할 주제가 아니다. 내가 잘 지원해 주기 위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겠지만, 그런 윗분의 관심이 실무자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무리하게 만든다. 기본적으로 핀테크는 대형 금융기관이 주도하는 그런 프로젝트가 아니다. 핀테크는 송곳처럼 날카롭게 기존 금융의 빈틈을, 약점을 찾아서 찔러야 하는 그런 프로젝트다. 한마디로 핀테크는 대형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거의 자해성 프로젝트여야 한다. 그걸 어떻게 대형금융기관이 스스로 한다는 말인가.
그저 주변의 기업가정신으로 똘똘 뭉친 스타트업이 찾아오면 만나주고 솔루션 채택하고 이용하면 된다. 아예 우리에게 회사를 팔라고 하지만 말았으면 한다. 우리하고만 거래하고 다른 데하고는 6개월 뒤에 하라는 단서만 안 붙이면 된다.
대형 금융기관이 핀테크를 직접 해도 안 되고, 아마 하고 싶어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