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태의 IT경영 한수]<59>경영자가 되면 10년은 해야 한다

[이강태의 IT경영 한수]<59>경영자가 되면 10년은 해야 한다

주총 시즌이다. 주총을 통해 새로운 경영자가 언론 조명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들어오고, 나가는 경영자는 마치 죄인인 것처럼 쓸쓸히 뒷문으로 사라진다. 뒷문으로 나가는 경영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원 없이 일하고 한 없이 나간다고 생각할까. 아마도 대부분이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그게 꼭 월급, 차량, 법인카드과 같은 개인적 혜택을 내려놓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회사를 위해서 무언가를 이루려 했는데 이루지 못하고 가는 아쉬움이 더 클 것이다. 몇 년 더 했더라면 회사를 더 성장시킬 수 있었는데 하는 그런 아쉬움이 아닐까.

새로 임명된 경영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 우선 그토록 원했던 새로운 자리를 앉았으니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무언가 업적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리에 떠오르는 첫 생각이 개혁과 혁신일 것이다. 전임자 경영방향을 승계해서 더욱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경영자를 별로 못 봤다. 2인자일 때는 그렇게 말 잘 듣고 다소곳하던 경영자가 자리에 앉기만 하면 내가 그 동안 얼마나 참고 살았는지 알고는 있냐는 식으로 전임자를 공격하는 것을 많이 봤다. 전임자와 인간적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경우에도 경영방식은 다르게 하고 싶어한다. 한마디로 개혁과 혁신을 전임자와 차별화 전략으로 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 취임한 경영자가 구조개혁과 혁신, 변화를 부르짖지만 임기 초에 직원들 군기 잡는데 쓰여질 뿐이다. 조직에서 20, 30년 있다 보면 배운 게 그게 그거고 알고 있는 것도 다 주변에서 보고 들은 것이라 크게 다를 게 없다. 취임사에서 말만 무섭게 할 뿐이지 몇달 지나고 나면 다 소통하고 화합하고 원만하게 경영하자는 쪽으로 방향이 바뀐다. 노조도 젊잖게 “임기 중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잘 살피시죠” 하면서 조용히 있어 달라고 압력을 넣는다. 새로운 경영자가 강한 어조로 말하는 변화와 혁신이 전임자가 아끼던 임원들 몰아내는 데 까지만 쓰여지지 더 이상 나가지 못한다.

새로운 경영자 대부분이 선대 경영자 철학과 전략을 승계하겠다고 하지 않는다. 아들이 물려받아도 창업자 경영 방식을 따르지 않는데 하물며 밀어내고 들어오는 사람이 앞사람 키워 주는 일을 굳이 할 일이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당연히 변해야 한다. 어렵게 경영자가 되었는데 왜 자기만 생각이 없겠는가. 왜 자기 이름으로 조직에 뭔가 남기고 싶지 않겠는가.

이렇게 야심차게 열성적으로 임기를 시작한 경영자가 물러나면서 왜 회한을 갖고 나가냐는 것이다. 스스로 무척 아쉬워하면서 나가는 이유가 뭘까. 왜 조금 더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까. 그런 아쉬움 근저에는 나가는 시점을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임기가 정해져 있고 임기가 보장이 된다면 임기를 계산해서 개혁이나 혁신 범위와 강도를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임기 내에 불쑥 비서실장이 찾아와서 “그만 쉬시지요” 한다든지 임기가 1, 2년이어서 매년 구걸하다시피 회장 눈치를 봐야 하면 그건 임기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런 경우 임기라는 것이 있을 이유조차 없다. 그냥 계약서에 ‘회장 마음대로’라고 적는 것이 낫다.

임기가 짧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끝나고 보면 별로 해 놓은 게 없다. 조용히 있었던 경영자나 요란한 소리를 낸 경영자나 별 차이가 없다. 어떻게 보면 경영 결과가 경영 질이 아니라 임기에 따라 결정된다. 공무원연금 개혁하는 거나 각종 경제법안 통과시키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우리 사회가 대화와 양보로 타협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기업에서 조차 무언가를 하려면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 대부분 임기가 그 최소한의 시간보다 더 짧다. 이것은 경영자 열정이나 혁신의지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 최소한의 시간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하나 결과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는 의미가 되고, 결과적으로 아무나 시켜도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영자 회전율이 올라가고 회전문 인사를 하게 되고 들어가는 사람이나 나가는 사람이나 업적보다는 좀더 오래할 생각만 하게 되는 것이다. 어미 새가 목청 큰 새끼에 먹이 주듯이 경영자를 마구잡이로 양산시키게 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봐도 존경받는 지도자는 일단 재임기간이 길었다. 재임기간이 위대한 지도자의 필요충분 조건인 것이다. 임금도 그랬고, 대통령도 그랬고, 회장도 그랬고, 사장도 그랬다. 재임기간이 길면 독재니 원맨쇼니 하지만 어쨌든 업적을 내기 위해서는 상당기간의 재직기간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경영자를 선택할 때는 매우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 경영자 육성 프로그램도 장기에 걸쳐 철저하게 관리돼야 한다. 후보자에게 여러가지 고된 임무를 줘서 훈련과 단련이 필요하다. 본사와 지점, 핵심부서와 비핵심부서, 국내외를 두루 경험하게 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탁월한 업적을 올리는 그런 인재를 경영자로 육성해 내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그 대신 이런 내부 프로그램에 의해 경영자가 되면 최소한 10년 이상은 할 수 있도록 임기를 보장해 줘야 한다.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