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아날로그 케이블 방송을 시청했던 지인이 최근 케이블 방송 가입을 해지했다. 그는 얼마 전 케이블 사업자에 8레벨 측파연구대(8VSB) 상품 가입 방법을 문의했다. 아날로그 가입자가 추가 비용과 별도 셋톱박스 없이 디지털 HD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는 언론 보도를 접했기 때문이다. 그는 까다로운 가입 기준 탓에 8VSB 상품 가입을 포기했다. 8VSB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모든 아날로그 가입자가 8VSB 전환에 동의해야 했기 때문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해 3월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방송 신호 전송 방식 8VSB를 케이블방송에 허용했다. 아날로그 방송 가입자에게 디지털 방송 복지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정책 시행 1년이 지난 현재 8VSB로 전환한 아날로그 가입자는 전국 160여개 셀 2만여 가구에 불과하다. 지난 2월 기준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 수가 740만명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0.3%에 불과하다.
당초 케이블방송업계는 8VSB가 허용되면 디지털 케이블 대중화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200~2000가구를 하나로 묶은 셀 내에서 모든 가입자에게 일일이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하는 현행 규정에 발목이 잡혔다. 각 가구를 방문해 사전 동의를 받기 위해 투입되는 대규모 인력·비용·시간은 삼중고다.
8VSB 전환을 희망하는 개별 가구는 셀 내 모든 아날로그 가입자가 동의할 때까지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 현재 미래부는 케이블방송 사업자가 수집한 8VSB 전환 동의서를 월 1회 접수하고 있다. 모든 세대가 8VSB 전환에 동의해도 시기가 맞지 않으면 최소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 다행히 미래부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케이블방송 사업자와 함께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시청자가 수혜를 받을 수 없는 방송 복지 정책은 의미가 없다. 700만가구를 웃도는 아날로그 시청자에 디지털 방송 복지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정보통신방송부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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