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호지스 지음|김희주·한지원 옮김|동아시아|872쪽|3만6000원
‘2차대전 당시 독일군암호 분석용 기계를 만들어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 만능기계라는 프로그래밍된 컴퓨터 개념을 처음 소개한 사람. 기계가 인간같은 지능을 가질 수 있다고 보고 지능기계를 만들려 한 사람. 이른바 튜링테스트를 창안하고 컴퓨터와 지능기계 시대의 도래를 예언한 선구자. 하지만 살아서는 당대의 천재들에 비해 형편없이 초라한 대접과 평가를 받았던 사람. 당시 외설죄였던 동성연애로 인해 성범죄자가 됐고 결국 비극적인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 이로 인해 사후에 더욱 유명해졌고 뒤늦게 현대문명을 이끈 위인으로 숭앙받고 있고 과거의 죄도 사면받은 인물.’
영국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천재 앨런 튜링(1912~1954)의 삶은 한마디로 파란 만장했다.
그는 1930년대에 이미 `만능기계`라는 개념을 처음 생각해 낸 사람이다. 이는 원하는 SW만 깔면 그에 따른 기능을 하는 오늘날의 컴퓨터와 같다.
튜링은 세상 사람들에게 2차대전이 발발한 1939년 27세 나이에 영국군의 극비암호해독 작전에 참여해 연합국의 승리를 이끈 신화적 인물로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나온 슈퍼봄베로 불리는 기계식 계산기 발명은 그의 천재성을 가장 널리 회자되게 만들었다.
튜링테스트는 인공지능의 자기학습 및 지능화가 뉴스의 초점이 되기 시작한 요즘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해 6월 러시아의 유진 구스트만이 세계 최초로 튜링테스트를 통과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또한 올초 국내에서도 상영된 영화 엑스 마키나도 이를 소재로 하고 있다.)
![[북리뷰]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15/04/12/article_12222008260080.jpg)
튜링은 암호해독기에서 더 나아갔다. 전쟁이 끝난 1948년 영국 맨체스터대학 컴퓨터연구소 부소장을 맡아 페란티 마크I이라는 세계최초의 전자식 상용컴퓨터를 내놓았다. 이는 미국 최초의 상용 전자 컴퓨터인 유니박보다 몇개월 먼저 나온 것이었다.
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전쟁 중의 놀라운 업적은 그가 죽은 지 한참 후인 70년대가 돼서야 알려졌다. 그 때까지도 영국 정부는 이런 사실을 극비에 부치고 있었다. 그의 성과와 업적이 오랫동안 숨겨진 채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다.
영국 옥스퍼드대 수리물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파란만장했던 튜링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1977년부터 수년간에 걸쳐 자료를 모으고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북리뷰]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15/04/12/article_12221941822844.jpg)
튜링의 출생부터 어린 시절 일화, 학창 시절 모습, 독일군 암호 해독의 비밀이 차례로 소개된다.
그가 ‘(기계가)계산할 수 있는 수’라는 개념을 내놓게 된 배경에서부터 인공지능, 즉 `전자뇌`를 생각하게 되는 철학적 배경도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
오늘 날 같은 컴퓨터 산업이 형성될 것이며 이 산업이 SW프로그래머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 예언한 내용도 나온다.
지능을 가진 기계가 등장하는 데 대한 사람들의 반발을 예언한 대목도 흥미롭다.
저자는 “튜링은 1947년 2월 ‘지능기계’의 개념이 다윈의 이론이 그랬듯 앞으로 반론에 부딪치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거론했다. a)지능면에서 인류에 대적할 만한 상대가존재할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성향...b)그런 기계를 제작하려는 시도는 프로메테우스의 행동처럼 불손한 일이라는 종교적 믿음...”이라고 쓰고 있다.
디지털의 아버지 클로드 섀넌(1916~2001), 헝가리출신인 프린스턴의 석학 폰 노이만(1903~1957),사이버네틱스의 제창자인 노버트 위너(1894~1964) 등과 같은 석학과의 만남 및 일화도 나온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중대범죄로 여겨진 동성애자 천재 앨런 튜링의 삶은 독특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삶은 동성애자가 정상적인 사람의 사회생활을 모방하는 게임같은 삶, 즉 ‘이미테이션 게임’이었다.
사족을 달자면 영국은 우리가 들어 본 배비지라는 인물에서부터 지난 해 구글이 인수한 인공지능회사 딥마인드에 이르기까지 컴퓨터분야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최초의 컴퓨터 엔진을 설계한 찰스 배비지(1792~1871)는 기억장치,카드 판독서에 의한 제어장치를 갖추면서 모든 계산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최초의 기계식 컴퓨터 해석엔진 설계자로 유명하다. 그를 도운 바이런의 딸 에이다 러브레이스(1815~1852)는 최초의 여성 프로그래머로 알려져 있다. 앨런 튜링은 암호해독기 슈퍼봄베, 음성암호화기기는 물론 유니박에 앞선 세계최초의 상용컴퓨터 페란티 마크I을 만들었다. 이 컴퓨터 개발에 참여했던 엔지니어 콘웨이 버너스리의 아들은 우리가 아는 월드와이드웹의 창시자 팀 버너스리(1955~ )다. 구글이 지난 해 인수한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 딥마인드를 만든 사람은 체스신동 출신인 영국인 데미스 하사비(1976~ )다.
전자신문인터넷 이재구국제과학전문기자 jk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