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은 한국인에게 발생하는 대표적인 암 중 하나로 높은 사망률과 발병률을 보인다. 특히 진행성 간암은 ‘치료 후 5년 생존율’이 매우 낮다. 간암 발병률은 7.6%로 5대 암에 포함되며, 사망률은 폐암에 이어 2위다. 특히 우리나라 40, 50대 남성 사망률 1위다.
간암 환자가 치료받은 날부터 5년 후에도 생존할 확률인 치료 후 5년 생존율은 28.6%로, 갑상선암 100%, 대장암 73.8%, 위암 69.4%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
간암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발생 초기 자각증상이 없어 조기 진단이 어렵고, 치료방법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간은 기능 70~80%가 손상돼도 특별한 자각증상이 없어서 ‘침묵의 장기’라고 불린다. 때문에 간에 이상을 느낄 때는 이미 상당히 병이 진전된 상태이고, 치료 역시 쉽지 않은 단계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효과적인 간암 치료법은 간 절제술이지만, 간암 초기에만 수술이 가능하다. 공인된 간암 치료제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유일하게 받은 넥사바(성분명 소라페닙:sorafenib) 한 가지다.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간암 환자에 모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간암 억제 유전자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밝혀냈다. 간암 억제 유전자 활동을 방해하는 표적물질을 발견함으로써 새로운 간암 치료제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톨릭의대 남석우 교수팀은 정상 조직에 비해 간암 조직에 많이 나타나는 ‘마이크로리보핵산-221(miR-221)’이 암 억제 유전자 ‘히스톤 탈아세틸화 효소6(HDAC6)’ 출현을 제어해 간암 세포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촉진하는 것을 밝혔다.
암 억제 유전자는 정상세포에 존재하는 것으로, 세포가 암세포화되는 것을 막는 유전자다. 암 억제 유전자가 돌연변이 또는 여러 다른 원인에 의해 기능을 잃게 되면 암이 발병하게 된다.
연구팀은 기존 간암 치료제가 가진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새로운 표적 기전 발굴이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HDAC6이 다른 암종에서와 달리 간암 억제 유전자로 작용할 수 있어, HDAC6 발현을 회복시키면 간암 치료에 효과적인 표적 기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특히 간암 조직에서 miR-221 발현이 증가돼 있는 사실을 토대로 이 물질에 의해 HDAC6의 기능이 억제되고 있을 것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연구팀은 간암 세포에서 miR-221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면 HDAC6이 많이 나타나고, 결과적으로 암세포 성장이 억제되는 것을 확인했다. 반대로 miR-221이 많아지면 HDAC6 발현이 감소되고, 암세포가 성장했다.
연구 결과를 형질 전환 마우스 모델에 적용해 동물모델 실험으로 입증했다. 또 간암 환자 종양조직을 이용한 인체시료 실험에서도 동일한 결과를 확인했다.
앞으로 암 억제 유전자 활성화를 방해하는 miR-221이 발생하는 과정을 인체 부작용 없이 조절하면, 간암 세포를 제거하는 새로운 치료제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간암에서 매우 강력한 암 억제 유전자 HDAC6 기능이 사라지는 원리를 찾았다”면서 “간세포 내 암 억제 유전자의 기능을 방해하는 과정을 제어하는 새로운 개념의 간암치료 방법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간암 치료제가 현저히 부족한 상황에서, 획기적인 표적 기전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간암 발생이나 간암 세포 성장을 막을 수 있는 치료제 개발에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결과는 의약학 분야 국제학술지 ‘간장학 저널(Journal of Hepatology)’ 온라인판 3월 28일자에 게재됐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