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4월 22일, 미국 이론 물리학자이자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을 만든 J.로버트 오펜하이머(John Robert Oppenheimer)가 태어났다.
오펜하이머는 뉴욕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일에서 태어났고, 단신으로 미국에 이민와서 양복지 안감 수입상으로 자리잡았다. 학창시절 오펜하이머는 물리학, 화학, 문학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가졌고, 성적도 뛰어났다. 하버드대 화학과에 진학했고,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
졸업 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실험물리학 연구소로 유학을 떠났으나, 화학을 전공한 한계 등으로 인해 곧 이론물리학을 연구하는 괴팅겐대학 연구소로 옮겼다. 양자역학이 태동하던 시기였던 이때 오펜하이머는 이곳에서 스펙트럼 양자론 등을 공부하고 박사학위까지 취득한다.
이론 물리학자로 명성을 얻은 오펜하이머는 미국으로 돌아와 교수로 연구와 후학을 양성하는데 힘썼다. 그가 교수가 됐을 때 나이는 25세에 불과했다.
교수로서도 뛰어났지만, 오펜하이머를 세계적 유명인사로 만든 데는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한 것이 컸다.
오펜하이머는 루즈벨트 대통령 요청으로 1941년께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943년 3월부터 1945년 10월까지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장으로 재직하며 원자폭탄 설계와 제작을 감독했다. 그리고 많은 과학자와 함께 원자폭탄 제조에 성공했다. 이 성과로 인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며 국가적인 영웅이 됐다.
사회적 영향력이 매우 큰 오펜하이머였지만, 미국 수소폭탄 제조계획에 반대하면서 단번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때마침 미국 사회에 불어 닥친 광적인 반공사상인 ‘매카시즘’과 맞물리며 그는 구소련 스파이로 몰렸다. 오펜하이머가 모함을 받은 데는 그가 과거에 만났던 약혼녀가 열렬한 공산당원이었다는 게 작용했다. 그의 부인이 공산당원과 결혼한 적이 있다는 점도 크게 부각됐다. 청문회까지 불려간 끝에 공산주의자라는 모함은 벗었지만 모든 공직에서 퇴출됐고 조용히 말년을 보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