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은 인터넷 회선이 무려 50만원대에 팔리는 등 통신·방송 결합상품 마케팅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정부가 최근 결합상품 정책을 재검토 중인 가운데 시장이 과열되면서 결합상품 규제 공방이 한층 가열될 조짐이다.
소비자단체는 소비자 혜택을 줄일 수 있다며 결합상품 규제를 반대하고 있다. 반면에 후발사업자는 결합상품이 불공정경쟁을 유발한다며 규제 장치 마련을 주장하고 있다.
21일 관련업계와 중고판매사이트를 종합하면 한 유선인터넷 사업자 13년 장기회선이 50만~6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1년에 4만원씩 가격이 형성됐다. 1년 전과 비교해 100% 급등한 가격이다. 희귀한 15년짜리는 70만~80만원을 호가한다. 이 회사는 약관상 명의 양도를 허용하고 있다.
장기회선 가격이 들썩이기 시작한 건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 전후다. 한 통신사가 결합상품 ‘온가족할인’을 이용하면 가족(최대 5인) 통신요금을 50%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이를 위해선 가족의 유무선 가입연수 30년을 채워야 하는 데 부족한 사람들이 유선망 장기회선으로 이를 메우는 것이다. 장기회선 구입비용은 50% 요금할인으로 얼마든지 회수할 수 있다.
이처럼 결합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는 것은 통신사가 단통법 이후 결합상품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직접 보조금을 제공하기가 어렵게 되자 결합할인 혜택을 강화해 기존 가입자는 묶고 신규가입자는 끌어오는 전략을 편 것이다. SK텔레콤(TB끼리 온가족무료), KT(올레 패밀리박스), LG유플러스(가족무한사랑클럽) 등 통신 3사가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
과열은 소비자 피해를 낳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21일 발표한 ‘3월 소비자상담 동향’에 따르면 초고속인터넷 상담건수는 1230건으로 전달(964건)보다 27.6%나 급증했다. 소비자원은 ‘결합상품 등 계약해지 시 위약금 과다청구’를 주요 상담내용으로 꼽았다. 이동전화 결합상품 93.7%(2013년)가 초고속인터넷을 포함하고 있을 정도로 두 상품은 결합시장의 핵심이다.
불공정거래 이슈도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2014년도 통신시장 경쟁상황평가 보고서에서 △시장지배력 전이 △결합 약정계약 고착화를 결합상품의 잠재적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시장지배력이 높은 상품과 일반 상품을 결합하면 일반 상품으로 지배력이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합으로 약정계약이 고착화되면 가입자 이동이 줄어 경쟁이 약화될 우려도 제기됐다.
LG유플러스, KT, 케이블TV방송협회 등이 SK텔레콤 결합상품에 대해 이 같은 문제를 적극 제기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이에 대해 소비자 혜택을 줄여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결합으로 묶으면 전체 통신비용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결합상품을 통해 연간 1조3000억원 정도 가계통신비가 절감되는 것으로 추산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20일 결합상품 만족도가 60%에 달하고 41%는 결합판매 규제에 부정적이라는 방송통신소비자 인식조사 결과를 내놨다.
결합상품 문제를 다루는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딜레마에 빠졌다. 공정거래와 소비자 혜택 둘 다 지켜야 하는 가치인데, 둘 모두 만족시키기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가입단계 문제점을 규제할 고시 개정안을 상반기 공개할 방침이다. 미래부는 연구반을 구성하고 하반기까지 결합상품시장을 면밀히 조사하기로 했다.
<통신·방송 결합상품 가입자수 추이/자료:정보통신정책연구원>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