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매년 세계 100대 혁신기업을 선정해 발표한다. 산업을 막론하고 혁신이 화두인 시대에 이런 흥미로운 연구는 세계 많은 기업의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국내 기업은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한다. 100대 혁신 기업을 선정하기 시작한 2011년부터 3년간 단 한번도 순위에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네이버가 53위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일본 8개, 중국 6개, 인도 5개 등 주변 아시아 국가에 비하면 부끄러운 성적이다. 모두가 비즈니스 혁신과 미래 성장을 외치며 많은 투자를 지속하고 있는데 왜 우리 기업의 혁신 노력이 이러한 대표 평가리스트에서 제대로 언급되고 있지 못하는 것일까.
포브스 혁신기업 선정 기준은 최근 7년간 매출성장률과 연간 투자 총 수익, 그리고 혁신 프리미엄 등 세 가지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기준은 혁신 프리미엄이다. 어떤 기업이 이익을 내는 신성장동력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낼지 예측하고 수치화한 점수다.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를 얼마나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혁신의 기준이 된다는 의미다. 여기서 방점은 ‘새로운’이 아니라 ‘지속성’에 찍힌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은 4.15%로 세계 1위다. 지난해에만 과학기술 R&D에 59조3009억원을 투자했다. 그 비중은 2009년부터 6.8%씩 빠르게 증가했다. 이런 국가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업과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는 별로 없다. 투자로는 세계 1위인 우리나라가 혁신 기업 100위 안에는 들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새로운 제품 개발과 상품화에 투자하는 자원의 양에 비해 지속적인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혁신에 실패하는 이유에는 경험 기반 협업시스템의 부재가 꼽힌다.
비즈니스 혁신을 위한 가장 기본적이면서 핵심적인 투자인 R&D는 말 그대로 연구(R)와 개발(D)이 통합 관리 돼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만나 본 여러 국내기업 대표이 이 둘 사이 협업에 어려움을 토로했다. 기업 규모가 커지고 에코시스템이 확장되며 글로벌 비즈니스 비중이 높아질수록 시스템 인프라 투자와 구성원 협업 사이에 간극이 커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일어난다. 기업이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해 온 경험조차 자산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사장되는 환경에서는 혁신과 새로운 가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속 가능한 혁신은 상상력을 통해 시작된다. 그리고 기업 대내외 경험 기반 협업을 통해 이뤄진다. 혁신기업을 조사한 전문가는 업종을 망라해 세계적 혁신 기업의 공통 DNA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혁신기업 방법론’라 불리는 이 법칙은 바로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이 고객 경험에서부터 시작한다고 강조한다. 경험의 시대에서 고객은 제품보다 제품이 주는 총체적인 경험을 구매한다. 즉 이제 제품이 아닌, 제품을 통해 사용자에 전달되는 경험이 제품 가치를 좌우하는 시대인 셈이다.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고 기술 개발의 시작점을 바꾸는 것이 혁신 기업이 되기 위한 첫 번째 과제다.
그러나 시스템과 기술 혹은 관리 프로세스에 함몰돼 내부 경험 자산을 효과적으로 교류하지 못하는 기업은 소비자와 고객이 원하는 경험을 내다보기는커녕 제대로 이해조차 할 수 없다. 외형적인 투자는 늘어나는데 비즈니스 혁신과 성장이 제대로 선순환되지 못하는 이유다. 기업이 오랜 시간 축적해온 전사적 경험과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공유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때 사용자 경험을 중심으로 한 지속 가능한 혁신이 가능하다.
본격적인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 동안의 양호한 성장 속도에 익숙한 우리 국내 기업들에겐 유난히 힘든 시기다. 그러나 기업혁신의 성과는 우리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동안 저성장 환경에 있는 유럽과 미국, 일본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진정한 혁신을 고민하고 준비하는 기업에게 이런 저성장 시대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새로운 상상력과 경험에 대한 고민이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혁신기업으로 거듭나는 열쇠가 되기를 기대한다.
조영빈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 Youngbin.cho@3d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