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해체가 뜨거운 이슈로 부상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오는 2040년까지 해체해야 할 지구촌 원전이 400기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 규모만 1000조원에 이른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1호기는 2007년 10년간 한 차례 수명 연장했다. 2년 뒤인 오는 2017년이면 운전수명을 추가 연장할 것인지, 해체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설계수명이 끝나 2012년 가동이 중단된 월성 1호기는 지난 2월 수명 연장 허가를 받았다. 다음 달 중순까지 재가동을 위한 점검작업을 하고 있다. 2020년 이후엔 국내 원전 상당수가 수명 연장 심의를 받아야 한다. 향후 20~30년 뒤면 무더기 해체 시점이 도래한다.
원전을 해체할 기술 자립화가 현안인 이유다.
국내에선 원전 해체 기술 연구 위치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원전 해체를 연구할 전문연구기관 원자력해체기술종합연구센터(이하 원전해체센터)를 서로 유치하기 위해 지자체 간 ‘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정부마저 부처 간 업무협조 미비를 이유로 입지 선정 작업을 미적거리고 있다.
원전해체 R&D와 함께 전문 인력을 키워야 할 교육기관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원전해체 비용 40%는 방폐 처리비
원전 해체 기술을 보유한 국가는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 등 일부다. 원전 해체가 힘든 이유는 방사성폐기물 때문이다. 원전 1기를 해체할 때 드는 비용 가운데 40%는 방사성폐기물 처리비다. 우리나라는 현재 원전 해체에 필요한 핵심기술 38개 중 17개만 보유하고 있다.
정부는 원전 해체 등 원자력분야 선진기술 확보를 위해 올해 원자력 연구개발사업에 3146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해 대비 7.7% 이상 늘었다. 총사업비 중 원자력기술개발 사업에만 1420억원이 투입된다. 원자력기술개발 사업에는 국내 장기 가동 원전 폐로에 대비하고 해외 원전 해체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원전 제염·해체 핵심기술개발을 중점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원전 전 주기적 규제 기반도 올해 안에 마련된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올해 초 원전 설계와 제작, 해체 분야까지 규제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올해 업무계획을 세웠다. 그동안 원전 규제는 현재 가동 중인 설비 운영 건전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규제 기반이 구축되면 원전 건설과 운영허가 단계에서부터 해체계획이 수립된다. 원전 해체 제도 근거가 마련되는 셈이다. 상업운전을 앞두고 운영허가를 기다리는 신고리 3호기와 신월성 2호기 등 신규 가동 원전 해체계획이 연내 수립될 전망이다.
원전 해체 산업 진흥법안도 마련된다. 지난 1월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원자력시설 해체에 관한 원자력시설 해체산업 진흥법안’을 발의했다. 원전해체산업진흥법안이 제정되면 원전 해체산업 지원이 본격화되고 원전 해체산업 기술개발 및 인력양성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지자체 간 원전 해체 인프라 유치전 치열
우리나라 원전은 1980년대 집중 건설됐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시기에 건설된 전 세계 원전은 300기가 훨씬 넘는다.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수명 연장되는 원전을 제외하더라도 원전 해체시장은 폭발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원전 해체 기술을 서둘러 확보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가 추진하는 원전해체센터는 앞으로 형성될 국내외 원전 해체 시장에 대비해 핵심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전문연구기관이다. 센터 입지가 결정되면 1400억원 이상을 투입할 계획이다.
원전해체센터를 둘러싼 지자체 유치경쟁도 치열하다. 원전해체센터 유치는 현재 경북도(경주)와 부산시(기장), 울산시(울주) 3개 지자체가 경합 중이다.
경북도는 국내 원전 설비 49%를 차지하고 있는 국내 원자력 최대 집적지라는 점을 부각시켜 센터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중수로와 경수로 원전을 동시에 보유한 입지 장점과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한전KPS, 한국전력기술, 포스텍, 두산중공업 등 풍부한 산학연 협력체계를 갖춘 점도 강점으로 내세운다. 원전해체센터만 들어오게 되면 원전 설계에서 운영, 해체까지 전 주기 기관을 보유하게 되는 셈이다.
부산시와 기장군은 지난해 9월 원전해체센터 유치 출범식을 열었다. 부지를 이미 확보했다는 점이 최대 강점이다. 기장군은 중입자가속기와 수출용 연구원자로 등이 들어설 동남권 방사선 의과학산업단지 내 3만3000㎡ 부지를 원전해체센터 부지로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울산시 역시 반경 30㎞ 내 원전 16기가 모여 있는 지역이지만 정부 혜택이 미흡하다며 원전해체센터 유치에 발 벗고 나섰다. 울산에는 원전산업과 관련된 산업 및 연구기반이 풍부해 원전해체센터가 건립되면 원전 해체 기술 개발 효과가 탁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유치 경쟁은 과열로 치닫는 분위기다. 경북은 지난해 말 경주시민으로부터 경주 건립 촉구 서명운동을 벌여 22만여명이 서명한 건의서를 국회와 미래부, 산업부에 전달했다.
울산시 울주군도 최근 47만여명이 서명한 유치 건의서를 정부에 전달했다.
부산도 현재 대대적인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향후 원전해체센터 부지가 확정되더라도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된다.
◇정부 연구센터 선정작업 속도 느려
원전해체기술을 확보하고 해외진출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원전해체센터 설립이 시급하다. 하지만 정부가 센터 설립을 위한 부지 선정 작업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센터 부지선정을 위한 기본계획을 마무리짓고 지난해 말까지 부지선정을 마칠 방침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현재 예비타당성조사를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부지선정을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미래부 관계자는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가 끝나는 시점을 6월 이후로 보고 그 전에 부지선정을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기재부는 예비타당성조사가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주무부처인 미래부와 원전 운영자인 산업부 간 협력이 우선”이라고 해명했다.
원전 전문가들은 “원전해체센터 설립이 늦어질수록 유치전에 뛰어든 지자체 불만이 커지고 더 나아가 원전해체기술 확보가 늦어져 원전해체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출처:원자력안전위원회
출처:미래부
대구=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