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에 두번 우는 기술우량기업

정부의 핀테크 국책과제에 선정되고도 자금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잇따르고 있다. 기업이 보유한 기술담보 평가보다는 과거 연체기록과 현재 재무제표가 보증서 발급유무의 우선순위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중소기업은 창의적 아이디어와 기술보유기업 육성을 위해 정부가 약 600억원 자금을 지원하는 ‘정보통신응용기술개발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기술력은 있으나 담보력이 부족한 ICT 중소기업을 위해 정부가 전체 예산의 80% 이상인 480억원을 기술담보대출 형태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민간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조달이 어려운 기술혁신형 ICT 중소기업에 자금 지원을 확대해 기술금융 활성화를 추진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하지만 이 기업은 정부 적합성 검사를 통과하고도 자금을 한푼도 지원받지 못했다.

현장실사를 담당하는 보증기금사가 과거 연체기록이 있다며 보증발급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보증기금사는 해당기업이 은행 대출금을 연체한 사실이 있어 보증을 할 수 없다는 결과를 통보했다. 2011년 이 기업은 재무상태가 어려워 은행의 일부 대출금을 연체했다. 하지만 이후 신사업이 성공하면서 모든 대출금을 원금상환 했고 지난해 재무구조 평가도 ‘우량’ 등급을 받았다. 올해 신용등급은 2단계 상승했고 연체기록 또한 모두 삭제됐다. 하지만 보증기금사는 4년 전 있던 연체기록을 문제 삼았다.

기업 사장은 “원금을 다 갚았고 연체기록까지 삭제됐지만 보증기금사에서 기술평가보다는 연체유무만을 잣대로 삼아 보증발급을 거부했다”며 “겉으로는 기술가치평가를 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채무관계 등 보수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어 국책사업 추진이 어렵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부 IT과제를 수주한 또 다른 중소기업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보증기관이 기술평가보다는 과거 재무제표를 평가해 보증서 발급유무를 결정하고 해당 심사관이 심지어 친분 있는 보증기금사 윗선에 이야기를 해보라는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

보증기금사의 이중적 기술평가 잣대가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기업을 두 번 울리고 있는 셈이다.

사업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자금조달인데 중소기업이 보유한 기술과 미래 가치보다는 과거 ‘주홍글씨’에 얽매인 보증심사는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연체내역이 삭제됐지만 수년전 연체기록 여부를 끄집어내 반영하는 것 또한 정부가 추진 중인 기술금융 기조와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보증기금사는 아무리 좋은 기술을 보유해도 재무건전성 등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옥석을 가리는 작업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보증기금 관계자는 “국책과제를 악용하는 사례도 있는 만큼 기술평가와 함께 해당기업의 과거 기록을 들여다보는 건 당연한 것”이라며 “중소기업 입장에서 다소 보수적으로 느낄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