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방송통신 결합규제 논란에 부쳐

[기고]방송통신 결합규제 논란에 부쳐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통신 결합상품 규제 개선 논의에 들어갔다. 일각에서는 결합상품을 제한하는 것이 소비자 이익에 반한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제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결합할인은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거래행태다. 따라서 이 같은 의견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존재하는 시장에서는 시장경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위험성이 매우 높다. 경쟁법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가격기능이 작동되는 시장경제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가격남용행위, 경쟁사업자배제행위 등 시장지배력 남용행위를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결합판매도 이용자 혜택과 지배력전이를 통한 경쟁제한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외적으로 경쟁법과 통신법을 통해 할인율이나 거래조건을 제한하는 등 규제를 하고 있으며, 학계에서도 다양한 이론적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독점사업자의 결합판매와 관련된 경쟁법 핵심 쟁점은, 상품 독점사업자가 다른 상품을 결합판매를 할 때 지배력 전이가 발생하는지다. 이에 대해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결합판매를 함으로써 시장지배력 전이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1990년대부터 반독점 판례가 등장했다.

통신은 독과점적 서비스가 포함된 결합판매는 비교적 최근 허용됐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 NTT도코모는 시장점유율이 40% 초반대까지 하락했지만 NTT 유선상품과의 결합은 올해 3월 조건부로 허용됐고, 프랑스 오렌지(Orange)도 시장점유율이 40% 초반까지 하락한 2010년에서야 조건부로 허용됐다. 영국은 유선전화 시장에서 시장지배력 문제가 해소된 이후인 2009년 BT의 유선전화가 포함된 결합상품을 처음으로 허용한 바 있다.

국내는 2007년부터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결합판매를 허용하며 요금적정성 기준과 동등결합 기준을 두어 결합판매로 인해 경쟁이 제한되지 않도록 한 바 있다.

그러나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결합판매 규제 제도 운용과 관련, 정부가 요금적정성 기준을 과도하게 완화했고 동등결합 기준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일각에서 제기됐다.

요금적정성 검사는 지배적 사업자의 과도한 할인으로 인해 경쟁사가 배제되는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10% 할인율 간이심사기준(결합요금의 할인율이 단품요금 대비 10% 이하면 요금 적정성을 충족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제도)을 30% 할인율 간이 심사기준으로 변경했다.

이동전화 평균 이용액이 타 통신서비스에 비해 월등하게 많기 때문에 이동전화 요금 30% 할인액은 다른 통신상품의 가격을 무료로 만들 수도 있다. 요금적정성 검사의 도입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는 셈이다.

동등결합 기준 훼손은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동전화 3회선을 묶으면 초고속인터넷을 공짜로 주는 다회선 결합상품은 이동전화 3회선을 묶는 데 가입자 점유율이 높은 회사 가입자가 경쟁사 가입자보다 훨씬 유리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다회선 결합상품은 이른바 네트워크 효과(가입자 규모가 많으면 신규 가입자 모집이 더 유리해지는 효과)를 유발하게 된다. 이와 관련, 프랑스는 시장지배적 이동전화사업자가 자사 가입자 간 통화 요금을 타사 가입자와의 통화 대비, 할인해 준 행위를 네트워크 효과를 유발하는 불공정한 행위로 규정하고 중지명령과 벌금을 부과한 바 있다.

해외 결합판매 규제 완화 사례는 상품시장의 경쟁 활성화가 전제된 상황에서 도입된 것이다. 또 외국은 결합판매와 관련된 경쟁 상황이 악화되면 공정한 경쟁 보장을 위해 규제당국이 권한을 행사한다.

국내 이동전화 시장은 15년 동안 1위 사업자의 가입자 점유율이 50% 선에서 고착돼 결합판매 허용의 대전제인 시장지배력 문제가 해소됐는지 생각해볼 문제다.

정부의 규제완화로 공정경쟁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황으로 보인다. 따라서 결합판매 규제가 완화된 지 8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관련 제도의 문제점을 파악해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기탁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 zenfire@sungshi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