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는 시력이 아주 나쁘다. 하지만 낮에는 햇빛을 피해 동굴에서 자고 밤에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닌다.
눈 대신 사람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초음파를 활용해 사물과 거리를 가늠, 방향을 찾는다. 코나 입에서 초음파를 뿜고 되돌아오는 메아리를 감지, 위치를 파악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박쥐는 포유동물 중 유일하게 최소 7mph에서 최대 20mph 속도까지 ‘파워비행’을 할 수 있다. 오직 인간만이 비행기를 만들어 이 속도를 이겨냈다. 그리고 생각보다 아주 민첩하게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며 작은 곤충을 잡아먹는다. 아슬아슬한 정밀 비행을 한다는 얘기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존스홉킨스대학, 콜롬비아대학, 메릴랜드대학 공동 연구진이 박쥐가 공기 흐름이 약간만 변해도 감지할 정도로 민감한 대응 세포를 지닌 날개를 가졌다는 것을 처음으로 증명해냈다. 날개에 일종의 ‘터치센서’가 달린 셈이다. 연구진이 과학저널 셀(Cell)에 실은 논문에 따르면 터치센서는 박쥐가 정밀 비행할 수 있는 핵심 요소다.
연구진은 박쥐 날개에 있는 감각 수용체가 공기 흐름 정보를 어떻게 뇌 뉴런에 전달하는지 밝혀냈다. 박쥐는 공기 흐름 정보를 읽어 비행 중 방향과 고도를 결정, 이에 기반을 두고 날아다닌다.
신시아 F 모스 존스홉킨스대학 뇌신경과학자는 “지금까지는 아무도 박쥐 날개에 있는 이런 ‘센서’를 연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며 “박쥐 날개 감각 수용체는 비행기 날개나 지느러미, 프로펠러 등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북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큰갈색박쥐(big brown bat)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박쥐는 독특한 촉각 회로(tactile circuitry)를 날개에 품게끔 진화했다. 촉각 회로는 비행 중 제어 능력을 올려줄 뿐만 아니라 박쥐가 날개를 활용해 어딘가를 오르거나 곤충을 잡을 때도 쓰였다.
박쥐 날개에 있는 감각 수용체 상당수는 얇은 머리카락형태로 밀집, 클러스터를 형성하는 식으로 배열돼 있다. 이 감각 세포들은 끝 부분이 창끝 모양이었고 근처에는 메르켈 세포도 존재했다. 메르켈 세포는 세포 촉각이 예민한 부위에 있는 피부 아래 기저층에서 발견되는 세포다. 박쥐가 나는 동안 공기가 이 털을 휘날리게 하면 이를 이용해 정보를 읽어 들였다.
연구진이 공기 펌프로 이 머리카락을 자극할 때 박쥐의 일차 체감각 피질(primary somatosensory cortex)에 있는 뉴런이 즉각 이에 응답했지만 반사신경처럼 위치를 변경하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감각세포는 일종의 ‘안내’ 역할까지만 하고 박쥐가 비행을 주도적으로 결정했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박쥐 날개 신경 세포 분포도도 발견해냈다. 박쥐에게 날개는 일종의 앞다리다. 다른 포유동물 앞다리는 신경 세포가 척수 윗부분과 연결돼있다. 하지만 박쥐는 달랐다. 날개에 있는 신경 뉴런은 척수 윗부분뿐만 아니라 아랫부분(lower parts)과도 이어져있었다. 이는 박쥐가 독특한 진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진은 “이번에 알아낸 정보는 향후 비행체를 설계할 때 난기류나 장애물을 감지, 조정할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연기자 pilla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