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여년 전 발견된 알루미늄과 마그네슘 소재가 정보기술(IT) 시장에서 기술을 꽃피우고 있다.
두 소재는 최근 스마트폰·발광다이오드(LED) 조명 등 첨단 IT 시장을 차지하고자 치열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알루미늄은 플라스틱을 밀어내고 IT 시장 내 대세 금속 소재로 자리매김했지만 최근 마그네슘 소재 도전에 직면했다. 다이캐스팅(주조)·압출·압연 등 새로운 공법 적용도 두 소재 간 기술 경쟁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알루미늄은 1827년 발견된 원소로 규소(Si) 다음으로 지구상에 많이 존재한다. 비중은 2.7로 공업용 금속 중 마그네슘 다음으로 가볍다. 다른 금속과 합금하기 쉽고 상온과 고온에서 쉽게 가공할 수 있다. 대기 중 내식력이 강하고 전기와 열을 모두 전달하는 도전체다.
가장 큰 매력은 무궁무진하게 변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순수 알루미늄 97%에 어떤 합성 원료를 3% 채우는지에 따라 9000가지가 넘는 조합이 가능하다. 오래전부터 알루미늄 소재가 산업용으로 쓰인 이유다.
건자재·자동차 경량화 소재 등에 주로 쓰였던 알루미늄 소재가 IT 산업에 대거 적용된 것은 애플 덕분이다. 애플은 ‘맥북’에 유니보디라는 이음 없는 일체화된 알루미늄 케이스를 적용해 주목을 끌었고 아이폰 시리즈에 알루미늄 소재를 본격적으로 적용했다. ‘아이폰4’에 처음 금속 소재 테두리를 사용하기 시작해 ‘아이폰5’ 뒷면 전체에 알루미늄을 썼다. 지난해 출시된 ‘아이폰6’도 역시 몸체 전체에 알루미늄 합금을 채택했다.
애플은 당분간 차기 제품에도 알루미늄 소재를 적용할 방침이다. 향후 출시할 ‘아이폰6S’에는 스포츠 용품 등에 주로 쓰이는 고강도 알루미늄 7000계열이 쓰일 것으로 알려졌다. 알루미늄은 합금 원소에 따라 뒤에 따라오는 숫자가 달라진다. 알루미늄 7000계열은 기존 아이폰 알루미늄 케이스 대비 60% 이상 강도가 뛰어나다.
IT업계 한 전문가는 “애플은 제조 기반이 없지만 소재 이해도가 굉장히 높은 기업”이라며 “탄탄한 소재부품 공급망(SCM)을 구축하고 신제품마다 혁신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내부에 소재 전문가가 많은 덕분”이라고 말했다.
애플에 이어 삼성전자도 알루미늄 소재를 스마트폰에 대거 채택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5’까지 플라스틱 케이스를 쓰다 지난해 하반기 알루미늄 메탈 케이스로 바꿨다. 지난해 8월 선보인 ‘갤럭시 알파’에 알루미늄 테두리를 처음 썼고 최근 선보인 ‘갤럭시S6’에는 메탈 풀 보디를 적용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6과 갤럭시S6 엣지에 스마트폰 업계 최초로 6013 알루미늄 합금을 썼다. 알루미늄 6013은 항공기·자동차·요트 등에 쓰이는 초고강도 합금이다.
알루미늄은 얇고 튼튼하게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방열 효과가 뛰어나다. 알루미늄은 철과 비교해 세 배나 열이 잘 빠진다. 스마트폰·태블릿PC뿐만 아니라 노트북PC·스마트TV에 이르기까지 고성능 반도체와 고집적 회로가 적용되는 추세다. 제조업체는 IT 제품 설계 시 방열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고민한다. 방열 성능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열이 잘 통하지 않는 기존 플라스틱 소재로는 한계가 있다. 알루미늄은 몸체 전체가 방열판 역할을 해 발열 문제를 덜어준다.
IT 산업 내 철옹성을 구축한 알루미늄 소재에 마그네슘 소재가 도전장을 던졌다. 그동안 마그네슘 소재는 알루미늄 합금 첨가제나 제철소 탈황제 등 보조 용도로만 쓰였다. 마그네슘도 IT 기기에 적합한 소재지만 가공하기 어렵고 비싼 가격에 팔리는 탓이다.
마그네슘은 1808년에 험프리 데비에 의해 발견됐다. 상업화는 알루미늄과 비슷한 시기에 진행됐지만 제련이 어려워 산업 용도로 크게 확산되지 못했다. 그나마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군사용에 제한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지난 10년간 마그네슘과 알루미늄 가격차가 점차 좁혀졌다.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전력난 및 구조조정 여파로 알루미늄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마그네슘 소재 생산 및 가공 기술이 발전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마그네슘 가격은 알루미늄보다 갑절 이상 비쌌지만 지금은 10% 내외까지 좁혀지기도 한다.
마그네슘 무게는 알루미늄 65%, 철강 22%에 불과하다. 현재 사용되는 금속 중 가장 가볍다. 지각의 약 2.1%를 차지하고 있으며 지구상에서 여섯 번째로 많은 금속 원소다. 마그네슘을 포함한 광석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해수에도 포함돼 있어 제련 기술만 있으면 세계 어디에서나 생산할 수 있다.
지난 금융위기 때도 생산량이 줄지 않을 정도로 마그네슘 수요는 탄탄한 편이다.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5% 이상 생산량이 늘고 있다. 현재 중국이 전체 마그네슘 생산 80%가량을 차지한다. 미국 5%, 러시아 5%, 이스라엘 4%, 카자흐스탄 3%, 브라질 2% 순이다.
최근 마그네슘 소재가 각광받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알루미늄 소재보다 훨씬 가볍다. 박판 성형성이 뛰어나고 방열 효과도 좋다. 내진동성에 강하고 전자파 차폐(EMI) 특성이 우수한 것도 장점이다.
IT용 마그네슘 소재 생산업체 영신기업의 백진욱 사장은 “알루미늄 소재가 이미 레드오션화된 반면에 마그네슘 소재 시장은 떠오르는 블루오션”이라며 “차별화된 소재 기술만 있다면 마그네슘 사용처는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