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름값 인하를 목적으로 도입한 석유전자상거래 시 수입부과금 환급제도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다음 달 제도 종료를 앞두고 정부가 1년 연장카드를 꺼내들자 기름값 인하 효과 검증 없이 제도를 연장하는 것은 세금낭비라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전자상거래로 가장 많은 세금혜택을 받은 정유업계마저 제도 연장을 강력 반대하고 나섰다. 같은 맥락에서 유가 인하 목적으로 도입한 알뜰주유소, 혼합판매 허용 정책까지 덩달아 정책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정부 3대 석유제품 유통정책이 모두 도마에 오른 셈이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정부 기름값 잡기 대책 성과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으며, 실제 부작용도 상당했기 때문에 제도 유지에 대한 반감이 크다고 분석했다.
반면에 정부는 석유수입부과금 환급에 따른 전자상거래 활성화로 거래 가격이 공개되고 이로 인해 유통구조 투명화까지 이뤄졌다며 제도 계속 운영의지를 밝혔다.
◇수입부과금 환급 1년 연장 ‘논란의 핵’
석유전자상거래가 가져온 실익이 뭔지 시장엔 의혹이 무성하다. 정부의 시장 개입 의도 논란 또한 사그라들지 않는다.
정부는 지난 2012년 3월 석유전자상거래를 도입했다. 한국거래소를 통해 휘발유와 경유를 거래하는 시스템인데 거래 활성화를 위해 석유제품 입·관세 철폐, 바이오디젤 혼합 의무 면제, 수입부과금 환급 등 파격적 혜택을 제공했다.
이는 곧 시장개입 논란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세금으로 혜택을 제공한 석유제품과 민간사업자 제품이 경쟁하는 구조가 공정 경쟁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정부가 내년 6월까지 1년간 수입부과금 환급을 연장하기로 하면서 논란은 다시 거세졌다. 정유사, 수입사에 원유 수입 때 부과한 세금을 돌려주는 제도로 2012년 7월 도입 당시는 리터당 16원 부과금 전액을 돌려 줬으나 지난해 7월부터 절반인 8원을 돌려주고 있다.
수입부과금 환급 연장으로 석유전자상거래를 통한 석유가격 안정화 기조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의지인데 실효성에 의문도 여전하다. 정부가 전자상거래 물량 확보를 위해 관세·수입부과금·소득세 등 다양한 세목에 지원한 혜택 규모는 지난 3년간 1000억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이 혜택이 소비자가격 인하로 바로 연결됐는지 객관적 검증이 불가능하다.
전국 주유소 판매물량 중 전자상거래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오프라인 거래가 90%에 달하고 전자상거래 물량과 섞이다 보니 유가 인하 효과를 측정하기 힘든 구조다. 국제유가가 매일 수십원씩 변동되는 상황에서 유가하락 효과와 세금혜택 효과를 분리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당초 계획과 달리 석유수입사 참여를 통한 가격 인하 효과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2012년부터 최초 2년 동안은 석유수입사 12개사가 돌려받은 수입부과금이 전체 환급액 80%에 육박했으나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석유수입사 거래 물량이 급감했다. 지난해 3개사 38억원, 올해 3월까지 1개사 2억8000만원에 그쳤다.
석유제품 공급자와 구매자가 장외에서 가격 협상을 마친 뒤 전자상거래로 체결만 하는 협의매매 비중이 커지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장외에서 이미 가격 협상을 마친 뒤 거래만 전자상거래로 하기 때문에 경쟁에 의한 가격 결정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석유전자상거래를 통해 거래된 경유 중 51.5%가 협의매매로 이뤄졌다. 감사원은 수입부과금 환급 조치가 경쟁매매와 동일하게 이뤄지는 것은 전자상거래 기본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놨다. 지난해 국정감사와 정부결산심사에서도 석유수입사에 대한 과도한 세금감면 특혜, 소비자가격 인하 효과 검증 불가, 형식적 전자상거래 운영 등 문제점이 지적됐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석유전자상거래를 비롯한 정부 유가 안정화 정책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석유제품 가격이 해외보다 비싸다는 의심에서 출발했는데, 그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면 해외 석유제품 수입이 급증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우리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부 정책은 오히려 해외 석유제품 수입을 부추길 여지가 있는 만큼 재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 “유통 기준 가격 공개 효과 분명해”
도입 당시부터 논란에 휩싸인 이 제도를 정부가 또 다시 1년 연장하기로 결정한 것은 석유제품 거래 가격을 지속 공개해 유통구조를 일반에 드러내기 위해서다.
전자상거래를 통해 석유제품 수입사가 각종 혜택을 받은 가격이 기준으로 작용해 전체 시장 가격 인상을 저지하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거래 가격이 공개됨으로써 석유시장 유통구조가 투명해지는 효과도 따라온다.
정부는 그동안 정유사와 대리점 또는 주유소 간 거래 가격이 공개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유통구조가 투명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한국석유공사 석유제품 정보사이트 오피넷에 정유사 공급 가격이 공개되지만 주간 단위이고 전국 평균이라 사업자가 적시에 시장 가격을 파악하기는 힘든 구조다.
정부는 운영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해 제도를 지속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용환 산업통상자원부 석유산업장은 “전자상거래 도입의 가장 큰 목적은 석유제품 거래 가격을 모든 사업자가 정확히 파악하고 이것이 벤치마킹 가격으로 활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라며 “일부 부작용이 지적되고 있지만 최종 소비자가 가격 인하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산 경유수입을 부추긴다는 지적은 현재 우리나라 경유 가격이 경쟁력을 갖고 있어 불가능하다”면서 “협의매매시 환급 규모를 축소하는 등 드러난 문제점은 보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석유전자상거래 개요
증권사 HTS(Home Trading System)와 유사한 방식으로 공급자와 수요자가 한국거래소 시스템을 통해 휘발유·경유를 거래하게 된다. 석유시장 투명성 제고와 공정한 경쟁 촉진을 통해 석유제품의 합리적 가격 형성을 목적으로 도입됐다.
표/석유전자상거래 혜택 내용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지원금액은 산업통상자원부 고시 상 지원 한도로 추정)
표/전자상거래 실적 중 경쟁매매〃협의매매 비중(단위:%)
자료: 한국거래소 전자상거래 월간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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