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개봉한 3D 애니메이션 ‘다이노타임’이 인기다. 어니, 맥스, 줄리아가 타임머신을 타고 1억년 전 공룡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줄거리다. 주인공뿐 아니라 등장하는 공룡마다 다양한 캐릭터를 부여했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으로 어린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다이노타임은 우리나라가 만든 최초 3D 애니메이션이다. 제작 과정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보유한 슈퍼컴퓨터 ‘피카소’를 활용했다. 슈퍼컴을 활용한 기간은 약 4개월로 4년 이상 걸리는 작업 기간을 대폭 축소했다.
슈퍼컴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제작 시 랜더링 과정에 사용된다. 랜더링은 컴퓨터로 각 프레임 마다 색감이나 질감을 입혀 현실성을 주는 과정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화면 픽셀 하나하나마다 빛의 간섭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를 계산해 실제와 같은 효과를 내는 작업이다.
영화 한 프레임에는 초당 24장 그림이 들어가는데 3D 영화는 입체 효과를 내야하기 때문에 수십만 장의 그림을 랜더링 해야 한다. 일반 컴퓨터는 그림 1장을 랜더링 하는 데도 반나절이 걸린다. 다이노타임 제작진이 KISTI에 도움을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슈퍼컴을 이용한 컴퓨터그래픽(CG)은 애니메이션 분야에 가장 많이 사용된다. 하지만 일반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특수효과도 슈퍼컴 기반 CG로 제작된다. 10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는 ‘어벤져스2’는 물론 ‘트랜스포머 시리즈’, ‘매트릭스’, ‘스파이더맨’ 등 대부분 블록버스터 영화가 CG를 슈퍼컴으로 제작했다.
슈퍼컴은 물리법칙을 활용한 시뮬레이션으로 CG 사실성을 극대화한다. 가령 고질라가 도시를 이동하면서 건물에 부딪혔을 경우, 건물이 어떻게 무너지고 파편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를 계산해낸다. 제대로 된 계산을 하지 못하면 화면이 매우 어색해진다.
대표적인 게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부터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고기 떼 등은 일부 실사 촬영과 더해 환상적 효과를 발휘했다. 대만 슈퍼컴퓨팅센터가 전략적으로 슈퍼컴을 지원했다.
대부분 영화의 폭발 장면이나 충돌 장면도 어김없이 슈퍼컴이 활용된다. 사용하는 슈퍼컴 성능이 좋을수록 더 현실적인 CG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 때문에 월트디즈니나 소니픽처스 같은 글로벌 콘텐츠 제작사는 모두 자체 슈퍼컴을 운영한다. 국내 영화 ‘미스터 고’ 제작사도 빅데이터 계산 역량을 갖춘 슈퍼컴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슈퍼컴은 한 나라의 과학 기술력을 대표한다. ‘한류’를 이끌 콘텐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도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내 슈퍼컴 투자는 열악한 상황이다. 지난해 말 탑500.org가 발표한 세계 슈퍼컴 순위에서 중국 텐허-2가 4회(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슈퍼컴은 100위 안에 단 1대도 들지 못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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