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 시카고 미국보건의료정보관리시스템협회(HIMSS) 연례 컨벤션에 다녀왔다. HIMSS는 1961년 설립 이래 의료정보 산업 분야에서 가장 큰 규모 컨벤션이다.
올해 참가등록자만 4만3000명, 전시부스도 1만개가 넘어 새로운 의학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체감했다. 학술대회 연사로 지난해에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올해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참석했다. 의료 IT융합 산업 중요성을 피력하고 보건정책 입안을 제시했다. 사물인터넷(IoT)과 웨어러블 디바이스 기기를 활용해 차원이 다른 진단과 치료, 만성 질병 관리 파괴적 의료 혁신 청사진이 한눈에 펼쳐졌다.
아쉬운 점도 있다. 1350개 이상 기업이 참가하는 전시회에 우리나라 업체는 2013년에 한 곳, 2014년에는 네 곳, 올해도 네 곳에 불과했다. 중국 업체는 3년 전에는 우리와 비슷한 한 두 곳 이었지만 2014년 10곳으로 늘어나더니 올해는 30여곳으로 무섭게 늘었다. 우리는 시장 선도는 커녕 후발주자인 중국에조차 뒤질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든다. 높은 의료 수준과 최첨단 IT를 갖고 있음에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니 한탄이 절로 나온다.
우리는 지난 몇 년 간 의료산업을 핵심 신성장동력 중 하나로 선정하고 R&D 지원을 포함한 정책지원이 이뤄졌다. 그러나 자랑할 만한 새로운 제품은 없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은 이런 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구슬을 꿰는데 장애물은 무엇이고 어떻게 꿰어야 하는 것일까. 첫째, 정부 R&D 지원 방향과 성과평가 방법을 바꿔야한다. IT와 헬스케어가 융합해 새로운 제품이나 지금까지 없던 헬스케어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창조경제 전형이다.
IT와 헬스케어 융합이 빠른 성과를 가져오려면 각 분야에서 사용되거나 사용단계에 다다른 기술을 융합해야 한다. 현장 요구를 반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 R&D는 기반 기술 개발이나 현장으로부터 동떨어진 지원이 주를 이뤘다.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몇 년 내 사용자에게 공급될 수 있는 몇 가지 최종 제품이 생산 가능한가에 R&D 지원 초점을 맞춰 처음부터 해외수출을 목표로 해야 한다. 산·학·연·관·병간 역할 분담 정책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정립해 의료산업 분야 국책연구소를 정부와 민간이 매칭해 운영하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
둘째, 국내 의료산업 새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R&D 펀드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 1993년 정부와 민간이 4 대 6 비율로 투자해 ‘바이 이스라엘(Buy Israel)’ 돌풍을 일으킨 요즈마펀드처럼 국내 벤처기업이 아이디어 발굴부터 해외진출까지 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
셋째, 의료산업 수출은 단순한 기기나 IT 수출이 아닌 한국 의료서비스와 의료콘텐츠가 융합된 고부가가치사업이다. 병원 참여와 역할이 중요함에도 의료현장 연계 중요성을 간과한다. 병원이 의료현장과 연계된 제품개발을 주도할 수 있는 한국식 성공모델을 서둘러 확산해야 한다.
국내의료기관 해외 직접 진출이나 현지 의료기관 위탁운영, 외국인의 국내 의료관광이 큰 화제다. 우리나라 의료수준이 높다는 방증이며 분명 의미 있고 기뻐할 일이다. 그러나 병원 직접진출은 노동집약적이라는 데 근원적 한계가 있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활동 중인 의사 10만명 중 10%가 해외진출에 성공한다 해도 6조달러에 이르는 세계 의료산업의 점유율 1%도 차지하기 힘들다.
물론 우리나라 병원 해외거점이 확보되면 선도 개발한 IT융합헬스, 나노의학, 유전체의학, 스마트 의료기기 진출 통로로 활용할 수 있다. 해외 소프트웨어 사업경험이 부족한 국내 중소기업은 국가 인지도와 병원 인지도를 활용할 수 있다. 외국기업과 대학, 병원 간 공동연구개발을 추진하는 개방형 혁신도 해야한다.
새로운 의학 탄생을 외면하고 미래 의료를 부정하는데 머물러 있다가는 선도자가 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신 의학의 주역이 될 것인지, 주어진 구슬을 꿰지 못해 영원한 들러리로 남을 것인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이철희 분당서울대병원장 chulhee@snubh.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