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 3월 고종이 머물던 경복궁 내 건청궁에서 우리나라 첫 백열등이 켜졌다. 에디슨이 탄소 필라멘트 전구를 발명한 지 8년 만이었다. 16촉 백열등 750개를 점등할 수 있는 설비를 갖췄지만 자주 꺼지고 비용도 많이 들어 ‘건달불’이라고도 불렸다. 13년 뒤인 1900년 4월에는 종로에 가로등 3개가 설치됐다. 비로소 서울 밤이 인공 빛에 눈을 뜬 것이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경제는 눈부시게 성장했다. 더불어 다양한 형태의 빛이 생활 속으로 점차 깊게 파고들었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와 같은 화려한 도시 야경은 선진사회 상징처럼 여겨지며 인류를 한껏 매료시켜 왔다.
그러나 산업혁명시대 석탄 연료가 내뿜던 매연처럼 과도하게 쏟아진 빛은 어느새 공해가 되고 있다. 에너지 낭비 문제를 넘어 생태계 건전성과 인체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일례로 광 주기를 감지해 생체리듬을 조절하고 면역기능을 강화하는 호르몬 멜라토닌은 빛에 노출되면 분비가 억제되는 특징이 있다. 실내외 조명은 물론이고 TV와 모니터, 스마트폰 등에 장시간 노출된 현대인에게 심각한 문제로 다가올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와 공존할 수 있는 좋은 빛을 만들 수 있을까. 그 답은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에서 찾아볼 수 있다. LED 조명은 기존 조명과 달리 빛 세기와 파장 제어가 가능하다. 또 빛 방향도 쉽게 조절할 수 있어 빛 공해를 방지하고 건강한 빛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가정과 사무실에서는 조명 색과 조도를 시간, 날씨에 따라 연출해 빛을 생체 리듬에 맞출 수 있게 된다. 주변 환경에 맞춰 빛 각도와 광량을 제어하는 가로등을 설계해 거리를 밝게 비추면서도 주거지로의 빛은 감소시켜 수면을 방해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우리나라 LED 산업은 LED 소자 분야에서 대기업 투자가 이어지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삼성전자, LG이노텍, 서울반도체 등은 글로벌 LED 시장에서 매출규모 10위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과거 LED 산업은 닛치아, 오스람 등 해외 기업이 특허를 무기로 시장을 주도했으나, 한국 기업이 활발한 기술 개발과 지식재산권 확보로 국가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서울반도체는 미국 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가 발표한 반도체 제조 부문 특허경쟁력 순위에서 LED 제조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LED 소자를 활용한 LED 조명 분야는 중소기업 비중이 크다. 관련 특허 분쟁이 많았던 만큼 중소기업도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지난 5년간 중소기업과 개인이 국내에 출원한 LED 조명 관련 특허건수는 대기업 출원건수의 약 세 배에 달한다. 다만 출원된 특허가 주로 제품 형상을 강조해 조명 효과 증진에 초점을 맞춘 개량 발명인 점은 아쉽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LED조명산업의 미래라 할 수 있는 LED 융합 조명 관련 출원 증가세다. LED 융합조명은 다른 산업 기술과 창의적 융합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신산업이다. 최근 IT와 결합한 시스템 조명, 의료, 농업·생명 등 LED 융합조명 분야에 중소기업과 개인 출원이 전체 출원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도시의 밤은 앞으로도 점점 다채로워질 것이다. 화려하게 빛나기만 했던 조명은 어둠과 공존하는 미덕을 갖게 될 것이다. 그 안에는 화려함보다는 필요한 곳에 알맞은 빛을 전달할 수 있는 세심함이 담긴 기술, 생명력 있는 삶을 선사하는 지속 가능한 기술이 녹아 있을 것이다. 그러한 기술을 만드는 것, 지금이 기회다.
노시청 한국전등기구LED산업협동조합 이사장 ibs@feelux.com